택견에 대한 정보 공개 신청을 하다.

택견은 현재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으로도 운영이 되고 있지만 문화재로는 1983년 6월 1일에 지정된 무형문화재 제76호이다. 무형문화재 제도는 예능보유자와 그에 따른 전수교육보조자, 이수자 그리고 전수자가 있다1. 택견 역사에서 이준서의 존재는 중요하다2. 공식적인 송덕기의 제자로 등재된 셈이다. 하지만 송덕기 타계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3. 현재 위대태껸과 어느정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세간에서는 이야기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후학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와 서적은 그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하고 있다.

 

정보 공개 신청 사유

도기현의 저서에서는 미국 유학 생활하지 얼마 안되어 전수생 박탈 이야기가 들려왔다고 한다4. 또한 이용복의 저서에서는 본인 관리가 되지 않아 기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송덕기의 전수자는 맥이 끊어졌다 이야기한다5. 이러한 문제점과 여덕의 저서에서 본 이준서의 사진은 살쪘다고 보기에는 여덕 저서에 있는 사진으로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이용복 저서에 있는 이준서의 모습과는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6. 다만, 얼굴이 둥글고 두상이 큰 편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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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덕, 2007 『여덕의 택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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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용복, 2007 『바람이 불어도 가야한다』

 

정보 공개 신청

기존의 저서들은 이준서 선생에 대해 매우 인색한 평가를 한다. 실력 부족이나 신비주의에 심취해 있어 그렇다라고 말한다. 정확히 그가 몇 년에 전수자를 박탈 또는 그만 두게 되었는지 그간 있던 일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당시 상황을 생각했을 때도 전수자 지정 날짜를 보아야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종 사진과 연도는 1987년 5월 17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송덕기 타계 후 유품을 그가 가지고 있다고 이용복이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7 타계 직전이나 병원 입원 전일 수도 있다.

 

그래서 금일 국가정보공개시스템에 들어가 이전에 신청했던 것8처럼 신청을 했다. 왜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잘하지 않는 것이며 지금과 같이 달라진 택견의 문제(다양한 해석, 전수받지 못한 것들과 송덕기의 이야기)이 난무하는 것이라고 조금 생각한다9.

 

전부는 될 수 없겠지만 예전 그와 좋지 않은 내부 인간관계나 그런 것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 책이 잘못된 부분을 집어내지 못하고 전한다면 큰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공개시스템 홈페이지가 보이지 않는 문제가 나한테 일어났지만 다행이 전화로 하니 그곳의 직원분이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고 접수 이력을 보니 이미 접수되서 진행 중이더라. 이제 문서만 오길 기다리면 일부분을 찾는데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겠다.


  1. 현재 택견 예능 보유자는 정경화이며 전수교육보조자는 박만엽, 이수자, 전수자는 한국택견협회 高유동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2. 택견 또는 태껸은 현대에 와서 송덕기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에 송덕기의 전수생이 없어졌다는 것은 직계 송덕기의 기술 및 몸짓이 사라진 것이라 볼 수 있다.

  3. 2005년 12월 1일 MBC 생방송 전국시대에서 김진영씨가 하는 것을 보아 무예활동은 어느정도 했을 것으로도 보인다.

  4. 도기현 2003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미국 생활을 시작한 얼마 후, 문화재 관리국과 택견에 관한 실질적인 대화창구였던 신한승선생님께서 이준서가 연습 부족으로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었으니 새로운 사람을 추천해야 한다고 하셔서 스승님과 그 당시 남아 있던 제자들이 상의하여 뒤에 나오는 나의 대학 후배인 이호범을 국가장학 전수생으로 재등록 시켰다는 연락을 받았다.”

  5. 이용복 2007 『바람이 불어도 가야한다』 “이준서씨와 그 일행들은 여습이 거의 되어있지 않았다. 이준서씨는 전보다 부쩍 살이 많이 쪄서 무겁고 둔해보였고 제대로 기량이 나오지 않았다. 이 일로 해서 두 분 선생님 사후에 박만엽, 정경화 두 사람은 이수자가 되었으나 이준서씨는 탈락하여 문화재 제도상으로 송 선생님을 승계하는 전수자는 맥이 끊어졌다.

  6. 두 사진이 시기를 달리하고 찍은 것인데 전후가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위에 밝힌 것처럼 체형과 몸의 비율 상의 문제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7. 이용복 2007 『바람이 불어도 가야한다』 “송덕기 선생님 유품을 그가 보관하고 있어서 송 선생님을 사사한 나나 도기현씨 등이 택견자료 정리를 위해 만나려고 애를 썼지만 철저하게 우리를 피하였다.” 도기현 2003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 “‘택견계승회'가 사라지기 일보 직전의 사태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돌아가신 스승님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스승님 유품 또한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중략…얘기를 들어 본 즉, 스승님의 유품은 스승님 밑에서 택견 국가장학생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이준서회원이 가져간 것 같은데 백방으로 연락을 해 보아도 통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8. 이전에 문화재 조사서 전부와 예능보유자 지정서를 전량 송부 받았다.

  9. 추후에 키워드로 등록이 되거나 글을 쓸 수 있겠지만 송덕기에게 마지막까지 배운 제자라고 본다면 그의 역할은 매우 크다. 현재에 다시 택견이 시작하게 된 것은 신한승의 공로가 크지만 그 시작과 근간은 송덕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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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정리하고 분류하고 분석하고 개선하자

구큰타 (작성자)

작성에 이해를 돕고자 댓글로 남깁니다. 이준서 선생님은 송덕기 선생님 타계 시까지 국가전수장학생 활동 보조비를 받았습니다. 자격박탈이라는 이야기(기존저서)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2016.05.13 21: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