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우는 69년부터 할아버지 찾아 배우고 왔다갔다 했었고. 나는 70년대 봄부터지... 본격적으로 한건 시험끝나고 70년대 봄부터지. 그래서 그때부터 용우는 계속 했고 나는 군대가기 전까지 했고.

- 민이홍

 

요근래 송덕기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계신 분들과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자 분들을 추가적으로 찾아뵙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의 칼럼 ‘태껸 계보(택견 계보)인물들과 재정립의 필요성’ 또는 저의 논문 ‘송덕기의 생애와 택견 형태 및 전수내용’에는 등장하지 않으시는 분들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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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우 선생님과 함께 마주대기를 하며 태껸을 배운 민이홍 선생님, 1973년 태권도지 기사 '은발의 태권도인'에서 언급된 2명의 젊은이의 주인공으로 유추된다.
1983년 말부터 태껸을 배운 이병한 선생님(좌),
1979년에 태껸을 배운 양창곡 선생님(우)- 현재 대한카팝크라브마가협회를 이끌고 계신다.


 

 

태껸이 늘 그렇듯 처음 시작은 품밟기였습니다. 품밟기는 태껸의 가장 근원이 되는 동작으로써 태껸이 가지는 독특한 구성 중 하나입니다. 이 시작에 대해서는 태껸하는 분들은 많은 고민을 가지고 어떠한 연습을 가지고 어느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랬었고요.

 

송덕기 선생님의 제자분들의 자료들이 쌓여갈 수록 정리할 수 있는 추가적인 내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80년대 전과 후의 교습법이 달랐다.

 

과거 논문 작성을 위한 조사에서 저는 태권도의 원로 선생님들께서 알려진 바와는 달리 태껸에 입문하였던 제자가 아니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다만, 택견의 사진자료를 남기는데 공로가 있는 분들이시지요). 과거 논문 인터뷰를 통해 이를 확정지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확인했었던 이유는 저 역시, 그 분들이 과연 제자였을까? 많은 것들을 알고 계실까? 궁금한 게 많았던 택견을 좋아하는 젊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송덕기 선생님의 제자분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 중에 다음과 같은 기준이 있습니다.

 

80년대를 기준으로 전과 후가 교습법이 달랐다는 것이죠.

 

교습법이 달랐다는 것은 곧 교육 내용이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어떤 부분이 달랐을까요? 바로 활갯짓입니다.

 

택견을 하는 대부분의 수련인들은 ‘팔을 크게 휘젓거나, 활개를 어깨 위로 올리는 것은 없었다’고 택견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택견을 정리하여 왔습니다.

 

이와 같은 택견에 대한 단편적인 시선은 택견을 작게 재단된 틀 안에 가둬두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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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을 먹다가 갑자기 보여진 동작 시범

 

태껸이라는 거는 품밟기부터 마주보고 했다고 활갯짓도 하면서 말이지. 활갯짓이라는게 상대를 현혹하고 방어수단이면서 잡기도하고 동시에 공격수단이었지. -(중략)- 옛날에 할아버지는 품밟기하면서 손을 흔들고 활갯짓을 했잖아. -(중략)- 할아버지가 (활갯짓 동작을) 활발하게 하셨지.

- 민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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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에 배우신 활갯짓 동작을 설명하며

처음할 때, 품밟기도 하고.... [활갯짓도 혹시..?] 당연하죠. 품밟기하면서 활갯짓도 하고. -(중략)- 아니야 아니야 난 했어. [선생님은 70년대...] 아, 그렇구나! 힘들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게(활갯짓) 중요하다 했어.

- 양창곡

 

 

70년대에 배운 제자분들의 공통적인 증언으로는 송덕기 선생님께서 품밟기 만큼이나 많이 시킨 것으로 활갯짓을 이야기 합니다. 단순히 품만 밟으며 연습한 것도 아니고 항상 활갯짓이 함께 하고 그에 따른 손질도 함께 한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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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는 아래로 흔들며 품밟는 현재 알고 있는 기본적인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저는 그땐 두가지 방법밖에 안했어요. 이게 그냥 이완(활개 내리고)시키는 동작이니까, 계속 이렇게 이완시키고 팔이 무거워 질 때까지... 하다보면 여기서부터 이렇게는 다 나가니까. 눈을 때리는 것도 그렇고 (중략) 여기서 연결되서 나가니까. 팔동작(높은 활갯짓)을 따로 하지는 않았고요.

- 이병한

 

 

80년대에 배운 이병한 선생님의 경우에는 활갯짓을 다양하게 연습하기 보단 팔을 내려 기본적인 형태를 취한 채 품밟기를 하면서 추가적으로 기술을 배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태껸의 활갯짓을 배우는 과정에 다양하게 손질을 배운 것 또한 알 수 있는데, 손질에는 치는 동작, 잡아채는 동작, 꺾는 동작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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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껸 책을 보이며) 여기 책 나는 다는 아니지만, 나는 이거 (XXXX)에서 못 마땅해하지만 나는 어느정도 인정을 해. -(중략)- 택견책을 보며 물주, 신주 이런 거는 모르지만, 이런 거는 다 있었고. 쓰러뜨리기 뭐... 침발러서 이렇게 쓸어뜨리기 있었고. -(중략)- [양창곡 관장님 스탠딩 암록] 나중에 내가 러시아가서 시스테마를 이렇게 하는데... 이걸 똑같은 동작이 있어. 얘네들은 관절을 (손으로) 밀어서 이렇게 하는데. 택견에서는 역으로 다른 거를 하면서 역으로 택견의 위대함이 여기에도 있었네... 하하하하.

- 양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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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저거하는데 보면은 일격필살이 많잖아. 흉악한 얘기를 많이 해. 뭐... 눈 훓치기, 코침주기, 낙함 이런 것들은 맞으면 죽는거야. 흉악하는거야. -(중략)- 그게 요즘은 (보면) 말도 바꾸고, 할아버지 말이 있는데.. 그럼 우리도 바꿔. 하하하하. (중략) 아주 다 바꿔놨어. 이름을 왜 택견이라고 붙혀갖고 차라리 딴걸로 붙히면 더 좋지.

- 민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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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것을 배운 것은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면 가르쳐 주셨어요. [물어보지 않으면..?] 물어보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고. -(중략)- [물어봐서배운 것중에는...?] 잡거나 잡혔을 때, 이렇게 땡기면 그 다음엔 이렇게 꺽어서 이렇게.

- 이병한

 

 

70년대에 배운 분들은 품밟기와 활갯짓을 같이 하면서 태껸을 교육 받으셨고, 위와 같은 기술(활갯짓을 이용해 상대를 꺾는 동작)은 80년대 배운 이병한 선생님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송덕기 선생님께 배운 다른 제자들 중에 이 기술들을 보지 못했거나 교수받지 못하였다는 사람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이는 송덕기 선생님의 태껸 교습에 대한 개인적인 기준과 학생이 어떻게 적재적소에 질문을 하며 배움을 이어나가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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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꺾는게 합기도에서는 손목꺽는거 이렇게 배웠다가 아이키도에서 이렇게 하는거 보고 좀 깜짝 놀랐지. 이거하고 암록이 있었어. 암록. 이게 있었어. 이게. 그래서 아. 이게... 그래서 이게 (훗날) 아 이걸 했었으면 좋지 않았나 그러지.

- 양창곡

 

 


2. 차이는 왜 있던 것일까.

 

 

송덕기 선생님께 배운 기간은 충분히 길었던 것 같지만, 왜 어떤 사람은 위의 동작을 알고 어떤 사람은 모를까요?

 

태껸은 무예입니다. 무예라는 특성상 하나의 완벽한 기술은 존재하기 힘들며 각 동작의 특성이 가지는 다양한 상황들을 알아야하는데, 이런 상황을 겪으려면 배우는 기간과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공감대 형성 또한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배움의 열정은 누구나 넘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옆집에서 매일보는 사람과 지방에서 한달에 한번 버스타고 오는 사람의 교육량(총 교육시간)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멀리서 오시는 분이 있었고, 또 어떤 분은 야학 강사∙다수의 동아리 회장, 학과활동까지 하면서 배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일주일 중에 몇 번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가 있었을까요?

 

송덕기 선생님은 전근대적인 교육방식을 취했었습니다.

 

교육의 큰 체계는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무예라는 특성상 다양한 상황에 따른 기술의 전개와 동작에서 나오는 쓰임들은 배우는데 굉장히 노력이 많이듭니다. 단편적인 한가지만 보았다면 그만큼 생각의 범위가 작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반면에 바로 옆동네, 옆집에 살면서 매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했다고 하다면 같은 기간이라고 할 지라도 내용이 다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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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껸과 웃대(윗대, 위대)와 관련되어 송덕기 선생님과 고용우 선생님 옛 추억을 설명하면서.

용우는 69년부터 할아버지 찾아 왔다갔다 배우고 했었고. 나는 70년대 봄부터지... 본격적으로 한건 시험끝나고 70년대 봄부터지. 그래서 그때부터 용우는 계속 했고 나는 군대가기 전까지 했고. -(중략)- 우리집은 여기에서 골목하나 나오거든?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우리집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할아버지집이었지. -(중략)- 용우는 할아버지한테 잘했어, 할아버지도 용우가 3일 정도만 안보여도 "용우 어디 아픈가?"하고 나한테 여쭤보실 정도였으니까.

- 민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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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선생님께 배운 기술들을 확인하면서

태권도의 원조 택견이 있다. 옛날 이발소에서. "어 여기 황학정 아니야? 가깝네" 집에서 가까워서 그 때 아마 고등학교 졸업해가지고... 그래서 그걸 보고선 그 때 이소룡 영화하고 막 뭐하고 판칠때라서. 그때 맹용과강할땐가 그런데... 다른 사람 이소룡 좋아하는데 나는 반대로 싫어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누가 있지 않을까 그래가지고 찾아갔죠. 찾아가서 황학정 밑에 노인정이 있었고 황학정 올라가는데는 철문이 있었는데 항상 열려있었고 할아버지는 노인정 있다가 황학정 올라가면 활터였는데, 그때 국회의원이나 그런 사람들이 활을 쏘는데 그때 관리인이 있었어. 그래서 할아버지 만나러 왔다고 물어보니까. "저기 노인정 가봐" 노인정 갔더니 황학정으로 들어가서 그 막 잠깐 더웠을 떄라 그 안에서 했어요. -(중략)- 79년도.. 한 1년 했어요. 1년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배운게. 별로 없어서. 왔다갔다. (미소)

- 양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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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선생님께 배운 기술들을 선보이며

할아버지를 찾아서 노인정에 갔어요. 그때 저는... 음.. 서울예고 선생이었는데, 그러니까 뭐, 그때 화실이나 장소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아, 내가 처음에 했을 때는 가기전이에요. 83년 쯤인가. [83년?] 네... 그래서 처음에 갔드니 몇 몇이 하고 있었어요. -(중략)- 거기서 직장인은 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중략)- 저는 매일이나 열심히 했던 것은 1년.. 1년 반? 나머지는 뜨문 뜨문 하더래도 할아버지 찾아뵙고 물어보고 이런식이었는데.

- 이병한

 

 

분명 달랐을 것입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의 선생님들을 보더라고 각자 아시는 범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태껸을 배우기 위해 꾸준히 자신의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과, 송덕기 선생님께서 시키신 것에 집중하는 자세로 하나씩 천천히 배움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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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의 관절기는 아이키도의 기술이랑 비슷한데, 대동류가 원조니까... (박종관 책, 태견원전제작비화 책) 여기서 있는거는 내가 다 아는것이고. 할아버님이 성격이나 이런 것 보면 농담을 하시거나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거지 (중략) (경기때,) 잘못하면 사람이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네? 죽어요 몇 명이나요?" 그러니까. "그랬다는 거지!" 이렇게 말씀하시고. 잘하는 사람은 사람 키높이로 점프하고 차는 사람 되게 많았다고. (중략) 할아버지는 거짓말도 농담도 안했거든.. 우스게 소리는 하더라도. (선생님의 말이니) 믿어야겠지.

- 양창곡

 

 

이 분들은 송덕기 할아버지를 통해 박종관 저서의 전통무술 택견(1983)의 내용보다 많은 범위의 태껸을 배웠고 김정윤 저서 태견원전제작비화(2006, 제작: 1985, 저서 태견의 일부가 나온 소책자)에 나온 동작들 또한 상당수를 알고 계셨습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분명 태견원전제작비화의 사진들은 송덕기 선생님의 기술이 맞으며, 본인들이 직접 수련하신 동작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일관되게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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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그 자체에. 배울때 그렇게 배웠을 수 있고, 할아버지께서 원래 그렇게 가르칠수도 있고, 아니면 그... 뭔가 가르칠때가 안되었다고 판단할 수가 있고.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을 하는데, 그래서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가서 그 노인정이나 찾아가서 여쭤보면 다있었요. 그 당시 동생도... 동생도 합기도를 배웠기 때문에. 그래서 저를 상대로 여러가지 기술들을 막 시험을 해보고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그런거 잡혔을 때 그런 거 물어보고 그럼 다 있어요. 기술들이. 근데, 그런거 가르쳐주진 않는거죠. 물어보면 그런 기술들을 찾아낼 수는 있는데, 그 애들이 제가 보기에는 품밟기부터 잘 안되니까. 그러니까 그 다음기술로 넘어가는 그런 거를 안가르쳐주신거 같아요. -(중략)- 그때 할아버지께서 품밟기는 한 6달, 7달 해야한다고 해야하는데. 젤 기초가 그건데. 다들 그냥 발차기를 할라고 하니까. 그리고 하단차기부터 먼저하고 그 다음에 점점 위로 올라가는데, 자꾸 이렇게 태권도의 영향인지. 자꾸 발따귀서부터 상단차는 것들을 하고 싶어하니까. 애들끼리 그러고 있으니까 (할아버지는) 그냥 보고 그냥 이상할때, 말씀해주시고 그런정도. 아주 기본적인 기술들? 

- 이병한

 

분명한 것은 기존의 송덕기 선생님의 교습방법과 과정들을 보았을 때, 투자하는 시간(총 교육시간)과 교습자의 태도(와 관계 형성; 신뢰도 및 친밀도 형성)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판단을 합니다. 

 

미운놈에게 떡하나 더 줄 수 있지만, 기술을 더 알려주는 선생님은 거의 없다고 보니까요.

 

이병한(1~1.8년), 양창곡(1~1.2년), 민이홍(4년) 선생님들은 배운 기간에 비해 기존 택견이 인식되고 있는 커리큘럼의 범위보다 많이 알고 있었고, 이 칼럼은 그 부분에 주목하여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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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견(2003)에서 돌땅치기

그 돌아서 차는 것, 돌땅치기는 이홍이가 먼저했지. 운동 잘 했어.

- 고용우

 

 

 

3. 택견은 경기(경기문화, 놀이문화)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 칼럼에 작성을 한 내용이 있습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택견을 경기문화를 지칭하는 말로 인식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처음부터 택견이라는 개념의 방향성을 잘못 잡아 발생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나뵌 세 분의 선생님들은 송덕기 선생님께 직접 태껸을 무술로써 학습하셨고, 지금도 그 인식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경기는.... 나는 무술로 접근을 한거지. -(중략)- 우리가 식민지시대를 거쳐서 이거를 발전을 못시켜서 그렇지 굉장히 많아 영춘권에서 발걸어서 이렇게(치는) 하는 거 하며...

- 양창곡

 

 

태껸은 품밟기, 손질, 발질, 태기질 외에도 다양한 무술적 기법들이 교육내용 안에 존재하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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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태껸연구센터(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84)에서

우리가 흔하게 하는게 천둥벌거숭이 모냥 날뛰는 사람이 지는 사람이야. 정적으로다 서 있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고. 왜냐면 틈이 많잖아.

- 민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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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잡으면 이렇게 당기면서 여기(옆구리)를 이렇게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 민이홍

 

 

위와 같은 동작들은 송덕기 선생님이 처음 품밟으며 활갯짓을 할 때, 가르치는 형태 중 하나로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손질 역시 다양하게 존재하여 왔고 그 방법은 일정한 규칙 또한 존재하였던 것으로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발질(발길질)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인식의 오류중 하나로는 중단 발질, 그 중 특히 곧은발길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문제(놀이이니 다치면 안된다)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같은 의견을 펼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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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됐을 때(상대가 앞발을 들어서 칠때), 여기(늦은배 또는 방광)를 이렇게(곧은발길) 차기도 하고 -(중략)- 뭣하러 윗까지 갈 필요가 없잖아. -(중략)- 할아버지가 알으킨 기술이지.

- 민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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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같은데 맞아서 꼬꾸러지고 그러는데 왠만하면 안찼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렇게 하다가 맞으면 꼬꾸라지고 그러는데, 사전에 꼭~ 안차는게 아니라 둘이 짜고 했다고 하더라고. (XXX)에서 하는게 100%다 그거는 아니고. -(중략)- (XXX)에서 (원래) 배를 안찬다 그래서 (선수들이) 몸을 세우고 있는거 보고선 실전적이다... 그래서 난 고개를 갸웃했어.

- 양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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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축(앞꿈치, 앞장심)을 지칭하며 

태껸이 발이 전부 밀어차는 것은 아니고요. 밀어차는 것이 많긴 한데, 끊어차는 발도 있고. 여기(앞축) 이런 것을 찰 땐, 빨리 끊어서... 그러니까... 음...  빨리 회수를... 하라고 했고. 돌려차고 밀어차고 끊어차고 그런 정도?

- 이병한

 

 

곧은발길은 금지된 것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동작이 아니라, 동문 간에 감정적으로 불편해질 수 있으니 가볍게 연습하기 위해 삼가한 것일 뿐, 태껸을 할 때는 배를 차지 않았다거나 중단 공격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위대태껸에서는 중단에 대한 발질로는 곁치기 뿐 아니라 는지르기, 복장지르기, 명지르기 등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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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을) 이렇게 잡아서 이렇게 하다가 이쪽(반대쪽)으로 확. (제끼니까) (박민태권도장에서 같이 운동하던 대학생이) 발랑 자빠졌어요. (할아버님 하는 것을 보면)경기다 이렇다 크게 구분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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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박치기.. 이게... (중략) 지금 보면 이게 태질이라고 하지 지금보면 MMA에서 비슷한 동작이 되게 많아. 몇 천년 역사가 있을 건데 MMA같은 기술이 왜 없겠어. 이건 굳이 운동을 안하더라도 싸움을 많이 하면 다 이렇게 되는 거야. 경험으로.

- 양창곡

 

다양한 태기질, 근접 상황에서는 박치기같은 직관적인 동작들은 물론 현대 격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술들 역시 다수 존재하여왔고 지도되어 왔습니다.

 

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놓고 봤을 때, 우리는 택견의 많은 것을 다른 시선으로 보아왔거나 스스로 시각을 좁혀왔을지 모릅니다. 태견책이 등장하였을 때, 많은 부정적인 의견들이 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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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선생님의 가슴치기, 고용우 선생님

이거를 부정하고 그래도 할아버지가 그런 성격이 아니였어. (동작을 누가)시켰다고, (할아버지가) 애기도 아니고... 아닌거 알면 불같은 성격이셨어. -(중략)- 할아버지가 알려준 기술이 택견 기술인데, 그걸 못 쓰고 어디를 못찬다는 건 말이 안되지.

- 양창곡.

 

할아버지가 택견 기술을 알려줄 때, 이건 안되고 저건 되고 그런 건 없었어요. 경기를 기준으로 택견이다 아니다를 하면 할아버지 기술은 택견이 아닌것이 되나요?

- 이병한

 

가끔 흉악한 것들은 위험하다하는 것은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가르칠 때, 그게 다 태껸 기술이야.

- 민이홍

 

 

앞으로 시간을 내어 더욱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송덕기 선생님에 대한 자료를 점차 내어보고자 합니다. 칼럼이 될 수도 논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우리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사고의 틀 안에 태껸을, 그리고 송덕기 선생님을 가두어놓고 보고 있지는 않은 가에 대해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페이스북 택견하는 사람들에 글에 대해,

 

경기 전 서로 간에 예를 표하는 방식은 늘 존재했습니다. 송덕기 선생님만 해도 KBS 선조의 수련세계에서 인사하시는 모습을 엿볼 수 있지요. 다만 구령을 과거 조선 식으로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희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는 당시 택견의 기술이나 모습이지 전체적 형태를 민속촌처럼 만들려고 함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시범을 구성했던 것입니다.

 

몸통을 향한 발길질, 위에 칼럼에도 작성한 것처럼 존재했습니다. 배운 기간에나 학습자의 태도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분명 송덕기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온 기술인데,

 

태권도의 상단돌려차기와 유사한 발길질은 태껸에 없었다는 주장은 어떠한 근거로 나올 수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오히려 원래 있던 것에 새로운 명칭을 붙히고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먹질 역시 송덕기 선생님께서 주먹쓰는 법, 장쓰는 법도 다양하게 가르친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위험하니 옛법이다라고 한것은 후대의 창작과 해석의 오류에서 나온 개념으로 보고 있고요.

이 역시 이전 칼럼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택견 협회와 공연패를 통틀어 역대급으로 기억에 남는다는 호평을 해주신 점에 대해서 택견인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태껸단체인 만큼 태껸을 이어가는 자부심을 갖는 만큼 태껸 기술이 잘 드러나도록 시범을 하고자 합니다.

 


 

추신. 인터뷰 자료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정리하고 있다. 추가 못한 분들이나 예민한 내용으로 공개되지 못한 것들 역시 추후 검토를 통해서 최대한 선보일 예정이고. 토론을 원하시는 분들은 http://tkteo.iptime.org/gym 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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