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우 선생님과의 첫 인연과 위대태껸

 

당시 고려대 학생이었던 저는 학교와 가까웠던 길음역 주변에 있는 전수관을 종종 다니곤 했습니다. 동아리 운동으로 처음 태껸을 접했던 저는 동아리에서 주로 시합을 위한 태껸을 해왔었죠. 그러다가 2008년 10월 어느 날, 전수관의 선생님을 통해서 고용우 선생님의 존재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진짜 태껸을 배운 분을 찾은 것 같다."는 말에 저는 처음에 반신반의했습니다.

"에이~ 그런 건 없는 거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사진들과 고용우 선생님이 알려주신 본세, 고대세, 팔짱끼기 등의 자세가 있다는 것과 그 대략의 형태들을 소개받았습니다. 좀더 자세히 들어보니, 그 동안 본 사진 속 송덕기 할아버지의 사진들 중 많은 동작이 태껸의 자세들이었고 그 내용과 기법을 소상히 아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럴리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나마 송덕기옹의 태껸을 유사하게 갖고 있는 것이 결련택견협회였다는 생각을 했던 저는 이 이상의 무엇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장심지르기를 조금 소개해주셨는데, 확실히 무술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날 일기장에 적어둘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게다가 다른 무예로 검도를 했었는데, 이걸로 싸움이 되? 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에 손질과 활갯짓을 맛보자 더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의심은 어느새 엄청난 호기심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도대체 그 고용우 선생님이란 분이 누구신지 너무나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고용우 선생님께서 한국에 와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빨리 그 분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고용우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것은 2008년 10월 28일이었습니다. 전수관에 잠시 오셨다가 바로 나가셨는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만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 날은 바로 그 분이 고용우 선생님인지도 모르고 인사만 했었습니다.

 

“내 택견의 배움 중 가장 의미 있는 날 중 하루일 것이다. 고용우 선생님을 뵙고 직접 배웠다.”

- 한끗차이의 일기장 중에서.

 

고용우 선생님으로부터 운동을 처음 배울 수 있었던 것은 2008년 11월 1일이었습니다. 그 날은 양천구민체육센터에서 운동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당시에 50대 이셨는데, 청바지를 입고 계셔서 ‘역시 미국에서 오셔서 좀 세련되셨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도 선생님은 종종 청바지를 즐겨 입곤 하셨습니다.

 

고용우 선생님의 첫인상으로 느낀 점은 정말 겸손하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의 고하를 불문하고 성인에게는 꼬박꼬박 존대를 해주셨고, 나이가 많으신 장년 분들께는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주셨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고용우 선생님을 뵈었던 성인들 중에는 제가 가장 어렸는데, 고용우 선생님께서는 여러 차례 만나시고 난 뒤에야 말을 놓으셨고, 말을 놓아도 편하게 대하는 표시일 뿐 항상 인격적으로 존중해주시고 배려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껸에 대해 설명해주실 때도 아는 체하는 태도가 아니라 본인이 송덕기 할아버지께 배운 바는 이러이러한 것이 있다는 것이지 무조건 이게 최고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거듭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물론 고용우 선생님 당신께서는 태껸의 기술과 방법에 대해서 아주 강한 자신감을 갖고 계셨지만 말입니다.

 

위대태껸에 대한 의심은 고용우 선생님을 뵙고 난 뒤 그날로 풀리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그날 고용우 선생님께 손질을 배우면서 들었던 감동이 잊히지 않습니다. 일기에도 배운 내용을 자세히 적을 정도였으니까요. 가장 신선했던 것은 바로 본세를 접할 때였습니다.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가 슬그머니 내려놓으시는 모습에서 송덕기 옹의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입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사진 중에 아주 대표적인 것으로 여기저기에서 많이 쓰지만, 그 동안 한 번도 그 동작에 대해 배우거나 설명을 듣지 못했던 것을 바로 이렇게 접하게 되니 신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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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우 선생님에게서 본세를 배울 때 겹쳐보였던 송덕기 할아버지의 사진」

 

그날은 자세와 손질을 많이 배웠고 고용우 선생님이 배우셨던 태껸의 형태에 대해서 기타 전반적인 설명을 해주신 날이었습니다. 그 때 적어둔 내용들을 지금 돌이켜보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고용우 선생님은 처음 알려주신 그 날부터 저희에게 허심탄회하게 기술을 자세히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날의 설명들은 지금까지 시종일관 동일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면 스승은 마음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신 내용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그건 고용우 선생님뿐만 아니라 고용우 선생님이 태껸을 배운 송덕기 할아버지 역시 그러하셨던 것 같습니다. 다만 배우려 하는 사람이 연습이 부족하거나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굳이 그 다음을 알려주지는 않으셨습니다. 무술은 기예이기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귀하게 여겨야만 귀해집니다. 배우는 사람이 자신이 배우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알려줘도 그 진가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억지로 주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인연이 소중한 것일 겁니다.

 

하지만 제자가 그 마음을 보여주고, 배운 바를 열심히 수련해서 궁금한 점과 그 다음 단계를 물어본다면 스승은 제자가 자신의 기예를 소중히 여기는 진심에 기뻐하고, 더 많이 가르쳐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고용우 선생님이 태껸을 배우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마다 송덕기 할아버지로부터 기술을 정확하게 배우시기 위해 꼼꼼하고 집요하게 연구하고 질문하셨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저는 부족함이 많지만, 연구센터의 선생님들은 정말 호기심이 왕성하고 열정이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다시 그날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고용우 선생님의 동작은 매우 편안해 보인 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어느 동작 하나 무리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대로 따라 하기에는 상당히 어색했습니다. 정말 아리달쏭했지요. 고용우 선생님은 그냥 편하게 하시는 것 같은데, 척 보기에도 매우 편하고 자연스럽게 하시는데, 막상 우리가 하려고 하면 어디 하나가 과하거나 모자란 점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수업이 진행되면서 점점 드러났습니다. 동작 하나하나에는 세세한 방법들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뻗었다가 회수하는 손질에서도 활갯짓의 원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었고, 품밟기와 굼슬르기, 손과 발의 조화, 체중이동,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고려, 내가 정확한 동작을 하기 위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등등... 수많은 방법들이 녹아있는 움직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체화한 고용우 선생님은 편안하게 슥슥 하시지만, 처음 배우는 우리들은 엉성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처음 배우는 것이니 만큼, 고용우 선생님은 기본적인 것들을 상당히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장심지르기가 제대로 나오기 위해서는 체중을 잘 전달해야 했고 일단 품밟기가 잘 되어야 했었지요. 그리고 자세가 정확하게 잡혀 있어야 거기서 곧바로 나오는 효율적인 지르기를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루만에는 절대 되지 않은 내용들이고,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처음 장심지르기를 배우면서도 “우와 정말 배울 것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껸은 잘 하는 만큼 동작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느낌이었습니다.

 

고용우 선생님은 그날 위대태껸의 형태를 조금 보여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자세들을 보여주셨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방식으로 공방에 쓰이는지에 대해서도 살짝 보여주셨지요. 여기서 다시 한 번 위대태껸의 매력이 폭발했었습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했기 때문입니다.

 

고용우 선생님의 공격은 한 번 시작하면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형태가 변하였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은 없었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이 들어갔습니다. 타격과 태기질과 신주(꺾기)를 넘나들면서 자유자재로 상대방을 제압했습니다. 고용우 선생님은 종종 ‘기법들’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셨는데,

 

‘도대체 그 기법들의 끝은 어디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제가 그 때의 성인 중 막내였기 때문에 저도 종종 기술을 맞아드렸는데, 기술을 받아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고용우 선생님의 기술을 받는 것은 본능적인 공포감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막을 수가 없다! 윽, 아프다.’

 

라는 생각이 기술을 쓰실 때마다 머리를 스쳤습니다.

위대태껸의 방법들은 굉장히 많은 연구와 깊이가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신체적 반응과 경향들을 치밀하게 분석한 결과였습니다.

 

'괜히 전통무예가 아니구나.'

 

전통무예가 강하다면, 그건 노하우와 경험의 축적에서 기술들이 끊임없이 개발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도 계속 최적의 기술을 향해 발전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고용우선생님의 기술 흐름은 엄청나게 자유로웠는데, 그 이유는 목표가 상대를 제압하는 것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합에 익숙했던 저의 생각처럼 반드시 머리를 맞춰야 한다든지, 반드시 넘어뜨려야 한다든지 이런 강박이 없었습니다.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큰 충격을 주거나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체를 활용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날 뒤에 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사람처럼 위대태껸인이 되었습니다.

 

 

위대태껸과 고용우 선생님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저는 지금까지 위대태껸을 하는 태껸인이라는 정체성을 마음속에 항상 품고 살고 있습니다. 위대태껸을 하면서 가장 큰 변화라면, 인체의 동작을 읽는 눈이 조금씩 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태껸은 무술로서 근본적으로 신체활동이기 때문에 태껸의 동작들 속에는 신체활동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보편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전신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법들이 있고 이에 대한 상세한 노하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태껸을 배우고 나면 다른 동작들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태껸을 통해 전통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던질 수 있었고, 그 체계를 잘 전달 받아 보존하고, 현대에 맞게 새롭게 이어가는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꾸준히 위대태껸의 수련에 함께하고,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2012년에는 뜬삿갓님, 밤선비님과 함께 미군 용산 기지에서 시범을 하기도 하고 양천의 수련모임에서 진행한 시범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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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뉴시스 - 주한 미군 기지에서 펼쳐진 택견 시범」

 

 

 

그리고 지금은 위대태껸연구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아는 선에서 위대태껸을 전달하고, 그래서 위대태껸을 수련할 때의 즐거움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정말 와닿는 표현들을 잘 정리했네요. 저같은 경우 글 재주가 적어서 감정표현에 서투릅니다. ^^; 다만, 추후에 택견을 하면 가졌던 의문과 택견에 대한 이야기를 연구하는 과정 중 느낀 메모나 태껸이 무엇인지에 대해 찾아갔던 것에 대해 준비 중입니다.
2016.06.13 17:32:40
한끗차이 (작성자)
구큰타님의 글은 평생 연구한 자료와 고민 때문에 이미 글재주가 중요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글재주도 부족하지 않으시구요

항상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2016.06.13 17:57:48
한끗차이님의 글을 보고 나니 더더욱 위대태껸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2016.06.13 18:48:28
크으.... 저도 하루빨리 뵙고 싶어지네요!! ㅎㅎ
2016.06.14 00:5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