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법의 정의는 무엇일까?

요근래 택견의 파괴본능, 또는 공격용 택견 등 인터넷의 수식어가 있어서 옛법택견이라는 단어가 난무하고 옛법이라는 단어에 대해 사용조차 하지 않던 곳에서도 옛법이라는 콘텐츠를 수련체계에 새롭게 끼어넣어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요근래 대중적인 옛법의 인식은 ‘과거에는 사용하였으나 현재 경기에는 사용되지 않는 기술’이라고 설명이 되어 왔습니다. 학계에서도 근거에 대한 확실한 논의 없이 줏어다 인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위대태껸에서는 옛법의 정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기술과 방법”의 총칭

이는 기술의 위험도와 무관하며 또한 경기로 치뤄졌던 규칙에서 선택 유무와 상관없이 명명되어 왔던 것입니다.


 

시기별 옛법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사례

옛법이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은 박종관(1983) 전통무술의 택견입니다. 이후에는 이용복(1989) 한국무예 택견, 택견연구, 그리고 이후에 등장은 도기현(2003), 도기현(2007)에 등장하고 사용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2001년 방영된 인간극장 고수를 찾아서에서 등장을 하게 됩니다.

박종관 택견(1983)

박종관 택견(1983)

박종관(1983)의 서적에서는 옛법을 옆구리를 주먹으로 치는 방법으로 설명을 하고 한편으로는 03번 처럼 늦은배나 겨드랑이를 치켜올리는 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서적에서는 옛법이 특정 개념이나 카테고리(분류)의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고, 기술의 명칭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송덕기 선생님을 함께 보고 박민 태권도장에서도 같이 함께 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박종관 선생과 일행(따르는 2여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이 분들도 송덕기 선생님 제자라고 할까요?)이 나이도 당시에 다른 멤버들보다 적지 않아 더 물어봤을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 후에 나타나는 현재의 옛법과 달리 기술 하나로만 되었을까라는 의문 역시 또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이후 출간된 택견 관련 서적에서도 옛법이 나옵니다.80~90년대의 민족부흥 열풍에 힘입고 엄청난 단체 불리기에 성공을 한 대한택견협회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송덕기 선생님께 감수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굳이 두 분 사후에 출간되었는지는 저는 모를 일입니다. 머리말에 나와있습니다.

이용복 택견(1990)

이곳에서는 1983년 이전의 서적과 같은 기술을 동작으로 넣고 있으며 “옛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단에 당구장 표시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택견은 “차서 넘어뜨리는 경기이며 민속 유희”라는 택견관이 잡혀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전 동일인, 택견연구(1995)

이 서적에서는 옛법의 개념에 대해 주먹쓰는 법으로 이전과 달리 의견제시의 형태가 아닌 연구라는 제목으로 규정 짓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지만, 필자가 이곳 저곳 교류전이나 운동한다고 다니던 10~20대 시점에는 ‘나 택견 좀 했어’하던 사람들은 거의 가지고 있는 서적으로 영향력이 적지 않고 나름의 열정이 담겨 있는 서적이긴 합니다.

위의 책이 출간된 시점이 우리가 알고 있는 옛법이라는 개념의 시작이나 밑바탕이 만들어진 때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서기택견이냐 결련택견이냐. 결련수냐 쌈수냐 품밟기이냐, 품밟기2의 방법이냐 가지고 토론을 하고 논쟁을 벌여왔던 시기였습니다(이 논쟁에 대해서는 명칭론으로 추후에 작성하겠습니다)

2001년 인간극장 고수를 찾아서 2부의 한 장면

이후, 2001년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극장 고수를 찾아서”가 방영을 하게 됩니다. 이 방송이 옛법이라는 명칭이 TV에서 사용된 첫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옛법은 “상대를 절명케 할 수 있는 기술”로 설명을 하고 있고 그 기술 설명에 대한 배경은 ‘시합용 결련택견 말고 타 무술과 싸울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갈증의 해소로 도끼질이 소개가 되었습니다(다른 분들을 만나보았을 때, 택견의 도끼질 사용은 저런 방식으로 하는 것은 유일하고 독창적인 해석입니다.).

“주먹이나 손날로 치는 것을 옛날에 옛법이라고 했지. 이게 옛법이고 한 번 맞으면 상대를 절명케 할 수 있는 기술이야”라는 답변으로 옛법에 대해 규정을 짓는 설명이 되었습니다. 이는 경기가 아닌 격투기술의 묶음은 모두 옛법이라고 정의되는 근간이 되어버렸죠.

여기서 한 가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상대를 해할 수 있는 기술, 절명케 하는 기술’이란 설명은 신한승 선생 계열의 ‘결련수(쌈수)’ 에서 설명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설명이 방송으로 나가는 때가 바로 1990과 1995년에 발간된 책의 이용복 선생의 옛법에 대한 첨언과 연구결과와 함께 맞물려서 도기현 선생의 옛법이라는 규정이 탄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2003년에 나의 스승 송덕기라는 서적을 발간하고 협회 명칭이 새롭게 구성이 되면서 대대적으로 홍보에 들어갑니다. 이때부터 옛법에 대한 설명이 위에서 설명한 ‘상대를 절명케할 수 있고 경기에서 사용되지 않는 기술들’을 옛법이라고 칭하게 됩니다. 2007년에 출간된 서적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택견단체에서도 영향을 받아 이러한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게 됩니다.

택견은 구한 말 이전부터 경기로써의 역사가 정립이 되었고, 택견은 경기이다, 그 외에 택견(경기)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기술들은 옛법이다.

이런 개념이 정립이 되자, 현행 택견 시합에서 안되는 기법이면 무엇이든 옛법이 되는 상황이 만들게 되었고, 택견은 경기이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동원된 다른 기술도 경기의 결과로 납득받는 시스템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송덕기 선생님과 이준서 선생님 문화재청 시범에서는 이렇게 보였습니다.

변화되고 변질된 인식과 단어의 사용

지금까지 옛법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변화하였고, 조사한 것들에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순서로 나열을 한다고 하면

옛법(유사; 결련수, 쌈수)의 서적별 정의

 

지금 위에서 언급한 옛법이라는 단어의 각 인물별 정의를 표로 정리하였습니다.

1990년 이후에 옛법이라는 ‘기술이 주먹을 쓰는 법‘으로 개념의 범위가 확장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서적에서는 따로 없지만 90년대 결련수로 불리는 한국택견 쪽에서는 TV다큐나 교습에 있어 결련수(쌈수)는 “뱃심으로 사람을 일순간 절명케 할 수 있는 위험한 수“로 홍보하여 대한택견 측과 논쟁이 다시 한 번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면 현재 퍼져 있는 옛법의 인식변화에서 두 가지 중요한 단서들입니다.

신한승 – 정경화 – 결련수는 살수로서 뱃심으로 상대를 일순간 절명케할 수 있다.
이용복 – 옛법은 경기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주먹쓰는 법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신한승-정경화로 이어지는 살수, 결련수, 쌈수 등의 개념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던 이용복의 개념에서는 “경기”라는 단서를 두고 개념을 정의하게 됩니다.

그 영향들로 2001년 인간극장 시점에는,

“주먹이나 손날로 치는 것을 옛날에 옛법이라고 했지. 이게 옛법이고 한 번 맞으면 상대를 절명케 할 수 있는 기술이야”

라고 설명을 하고 책(2003, 2007)에서도 같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옛법 – 경기에서 쓰지 못하는 반칙기술들을 모아둔 것이 옛법

박종관(1983)

이라 정의가 되기 이릅니다. 태껸은 곧 경기가 된 것이죠.

이 설명은 대한택견의 교육체계에 만들어진 연장누르기와도 잘 맞아 떨어지기에 지금은 보편화되어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들이 맞는 말일까요?

위의 흐름에서 지금까지 옛법이라는 단어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느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중 인간극장에서 송덕기 선생님에게 배웠다라는 말로 신뢰를 쌓으며 의심에 대한 부분은 “가까운 사람만 알 수도 있잖아? 따로 이렇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잖아?”하는 말들로 다른 반박들은 사그러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그리고 가까운 후배들 몇 만 송덕기 선생님께 배운 것은 아닙니다.

 

다시 새로운 의심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를 하였을 때, 문화재 관련 서류를 전부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문화재 조사서에서는 일관된(?) 이야기가 등장을 합니다.

“택견(태껸)의 기술을 체육적 가치가 없어 생략한다”

태껸의 손질 사용에 있어서 체육적, 민속 놀이적인 가치가 없기에 생략한다는 주석입니다. 택견에 다양한 손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박종관 선생의 택견에서 등장한 것만 26개가 등장합니다. 그 중 타격을 위한 손질은 18여개로 볼 수 있습니다.) 문화재 조사에서 택견이 가진 손질이 과감하게 사라졌습니다.

신한승 선생은 택견을 넘어 “우리에겐 아직 수벽치기가 있지 않은가…”라는 말로 전통무예에 대한 열정으로 포장되었습니다. 문화재 지정의 공로는 충분히 납득하나 문화재 위원들과 함께 택견이 민속으로 재단되는 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체육적, 민속놀이적 가치를 높이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태껸 경기는 1년에 1~3번 치뤄진게 고작인데 언제부터 민속적 가치를 마음대로 제단했는지 문화재 위원이었던 분들 밖에 모를 것입니다(관련된 의심할만한 근거는 추후에).

모두가 추정하는 것처럼 택견에서 발을 차용하고, 민간에서 얻은 손기술과 택견에 손기술을 한데 묶어 수벽치기로 복원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