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임호

형섭이 2024.10.28 10: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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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잡지 《별건곤》 제21호팔장사 두령 이수영의 기사를 현대어로 번역한 글입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원 사료 링크: http://db.history.go.kr/id/ma_015_0190_0420)

별건곤 기사 제목

[사진] 별건곤 기사 제목 원본

팔장사 두령 이수영 사진

[사진] 팔장사 두령 이수영 노인의 생전 모습


절세지용! 초인간적 괴력!

격천축지의 팔장사 두령, 천지장사 이수영 노인의 20대

음력으로 초하룻날이나 보름날 아침 7시쯤 교동골목으로 올라가면 천도교당 앞 운현궁 대문으로 키가 크고 탕건 Generals와 갓을 쓴 채 수수하게 꾸민, 얼핏 보기에 한 3, 40밖에 안 되어 보이는 올해로 70세의 노장사 한 분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초하루와 보름마다 대원군 3대의 영전에 향을 올리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도 장정 몇 십명쯤은 앞에 달려들어도 족히 때려 업칠 수 있겠다는 삭옹(정정한 노인)이지만, 그의 20대에는 능히 하늘을 때려부수고 땅을 박차 터트릴 만한 기개와 용력을 가진 천하장사였다. 그는 이 기개와 용력으로 고종 태황제와 대원군에게 발탁되어 ‘이여포’, ‘이길동’, ‘팔장사 두령’, ‘운현궁 맹호’ 등으로 일컬어졌다.

1. 달리기산에서의 대결투

 

그가 청년시절 힘쓰고 사람 치고 불한당 때려잡던 이야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장쾌한 대활극 몇 가지만 들춰보기로 한다.

수영이 종친부에서 낭청으로 근무할 때, 그는 본가 양주 계산답동(닥뫼논골)으로 부모님을 뵙기 위해 마부 봉이를 데리고 서울을 떠나서 천마산 고개를 넘으려고 했다. 고개 밑 주막집에서 봉이와 술 한 잔하며 허기를 달래고 고개가 험하기 때문에 말을 탈 수는 없으니까 말을 그냥 끌고 주막집을 나와서 몇 발짝을 산으로 올라가노라니 고개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숨이 턱에 닿도록 달음박질을 쳐 내려왔다.

피난하는 사람들: "여보시오, 당신 어디 가려고 그쪽으로 올라가시오?"

이수영: "우리는 이 고개를 넘으려고 가는 길이오."

피난하는 사람들: (손을 가로 홰홰 내저으며) "여보시오, 당초에 생각도 마시오. 지금 고개 넘어 개울바닥에 불한당 3, 40명이 진을 치고 서서 서울 올라가는 사람들을 허리띠 끌러 포박해놓고 돈이고 의복 패물 할 것 없이 죄다 훌훌 빼앗겼습니다. 아예 넘어갈 생각도 마시오."

그러나 수영은 이렇게 말리는 것을 도무지 듣지 않고 오히려 심심도 하고 힘도 꼴리고 한데 해롭지 않게 생각할 뿐 조금도 마음에 겁이 나지를 않는지라, 봉이더러 말을 몰고 슬슬 뒤를 따라오라고 일러 놓고 먼저 올라간다. 마부 봉이도 그의 실력을 아는지라 그냥 따라오기는 하나 자꾸만 뒤에서 "나리마님 조심하세요."를 연신 부른다. 그는 "오냐 걱정 말고 올라오너라!" 이러면서 올라가노라니 해는 지고 어두침침 어두워가는데 인적은 아주 영영 끊어졌다.

고개를 턱 올라서서 그 아래 개울 바닥을 내려가보니 소나무 밑에마다 사람이 하나씩 상투는 풀린 채 포박되어 매달려 있고 길가의 좌우에는 불한당이 바위 위에 듬성듬성 걸터 앉아있다. 모른 척 하고 슬몃슬몃 내려가며 보니 모두 다 그 아랫동네 개평, 논고을 사는 아는 사람이다. 묶여있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는 "아이구 나리마님! 사람 좀 살려주시오." 애원을 한다.

그래도 못 들은 척 슬슬 내려가니까 몇 놈은 그냥 걸터 앉은 채 꿈쩍도 않고, 수십명 불한당은 쫑긋쫑긋 일어서서 양편으로 갈라서 고개 위로 향하여 올라가며 둥그렇게 에워싼다. 그러고 보니 혼자 3, 40명 도적놈들의 한 가운데 들어서 곤재핵심(困在核心)으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지만, 그의 심장은 이런 때일수록 단단해지고 그의 철권은 이런 일을 당할수록 뿔뚱내뻐친다. 그 중 손에 커다란 박달나무 몽둥이를 든 건장한 덩치 큰 한 놈이 한 발 쑥 내밀었다.

불한당 괴수: "네 이놈! 어데서 오니?"

이수영: "나는 서울서 온다!"

불한당 괴수: "이 놈 봐라! 서울서 온다? 이런 건방진 놈을 봤나! 그래 네놈 어디로 가는 길이냐?"

이수영: "논고을로 간다! 그래 어쩌란 말이냐?"

불한당 괴수: "이 놈이 그래도 계속 뻗대는구나! 네 이놈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이수영: "이놈아 알기는 뭘 알어… 보아하니 너 이놈들 불한당이로구나!"

옆에 있던 불한당: "그 까짓 놈 그럴 게 뭐 있어? 달려 들어서 껍데기를 벗겨내리지 뭘…"

그는 단단한 물푸레 나무에 쇠가죽을 단 채찍 하나만 들었는데 그놈들을 가만히 보니까 죄다 단도와 방망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앞에 나서서 말 붙이는 놈이 그 중에서 제일 괴수인 모양이라, 이놈 하나만 때려 꺼꾸러트리면 나머지는 문제도 없을 모양이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이 놈아 내가 껍데기를 벗겨…!" 말이 가며 주먹이 들어가는데 대번에 턱주가리 밑을 치받혀 질렀더니 목뼈가 부러지느라고 딱! 소리가 산골에 찌렁 울리면서 그 놈은 아무 소리 없이 그 자리에 그냥 꺼꾸러진다.

그리고 나서는 채찍을 들고 전후좌우에 있는 놈들을 제각기 한 번씩 이놈 치고 저놈 치고 한참 번개같이 날뛰는 통에 그 많던 놈들이 일시에 돌무더기 흩어지듯이 우르르 도망치며 산으로 뽈뽈 기어다녔다. 그것을 본 그는 신바람이 나서 채찍을 집어 내던지고 그 놈이 잡고 있던 몽둥이를 집어들고 산비탈로 도망가는 놈을 날랜 호랑이같이 쫓아가서 등마루를 겨냥해서 냅다 내려치니, 바위에 엎드려 기어가던 그대로 두 조각이 쩍 뽀개지며 그냥 그 바위에 척 붙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묶여 매달린 사람들을 돌아가며 풀어 놓아서 데리고 도로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가서 그날 밤은 무사히 지났는데 나중에 차력대신(借力大臣)으로 유명하던 이범진(李範晋)이 그 때 마침 그 동네로 친척을 보러 왔다가 수영이 본가에 온 것을 알고서 만나 보려고 찾아왔다. 서로 같은 종가(宗家) 일가이기도 하고 또 힘센 것으로도 서로 뜻이 맞았던(志氣相合) 모양이다. 찾아와서 아침을 같이 먹던 도중 별안간 동네 사람이 어떤 목패 하나를 가지고 왔다. "동네 앞 길가에 이것이 꽂혀 있는데 나리마님께 오는 것이라서 뽑아 왔습니다."

그 목패를 보니 "이수영은 열어보아라. 네가 용력이 대단하다 하니 명일 정오에 달리기산으로 올지어다. 용력이 얼마나 되는지 나와 한 번 결투를 하여보자. 네가 만일 그 시간에 그 장소로 오지 않으면 졸장부이니라." 하는 도전문이었다. 이것을 본 온 집안은 황황망조하고 그의 부친까지도 못내 염려하나 그는 피가 끓고 살덩이가 뛰놀아 뻗치는 힘과 노기를 이기지 못하여 마권찰장(摩拳擦掌)하며 어쩔 줄 모르는데, 찾아왔던 이범진도 역시 그의 부친을 위로하며 "우리들이 가고 보면 어지간한 무기깨나 가졌더라도 몇십 몇백은 넉넉히 처엎을 것이니 나도 같이 동행합시다." 하며 동행하기를 청한다.

그리하여 두 장사는 몸을 거뜬하게 꾸미고서 결투의 길을 떠난다. 이 소문이 나니까 온 동네 사람들은 죄다 문 앞에 서서 구경을 하는데 여기 저기서 "저게 이범진이다! 저게 낙동장신(樂洞將臣) 이경하(李景夏)의 자제란다! 대를 이어 명장이다!" 하고 수군거렸다. 수군대는 소리가 이범진의 귀에 슬쩍 실처럼 감길적에 신이 나고 용기가 백배되어 대뜰에 나서서 이수영을 돌아다 보며 "여보 종씨! 장부가 세상에 나와 이럴 때 힘 한번 풀어보지 못하고 어느 때 써보겠소." 말을 마치며 "엑기!" 소리가 기왓장이 울리게 한마디 나더니 대뜰에서 한 번 솟아 두 활개를 좍 펴고 높게도 얕게도 뜨지 않고 솔개처럼 날아가 그 앞 논을 지나 건너편 논둑에 오똑 내려선다.

그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소리치며 야단이다. 이범진이 슥 돌아서더니 이수영을 건너다 보면서 "이보 종씨도 얼른 뛰어 건너와요! 글쎄…" 손짓을 하며 연신 재촉을 한다. 그것을 본 수영은 어찌나 신명이 꼴리던지 어깨가 한번 으쓱! "엑!" 소리와 함께 훌쩍 솟아 칼새같이 날아가서 또한 역시 이범진이 던져진 그 자리에 가서 사뿐 내려선다. 온 동네 사람들의 환호와 칭찬이 휘날리는 그 속으로 범같은 두 명의 장군이 손에는 촌철도 들지 않고 의기양양 대활보로 달리기산을 올라갔다.

달리기산을 훌쩍 넘어 그 아래 벌판이 가깝도록 도무지 한 놈도 보이지 않는지라 "허장성세로 그 태만 놓았지 오기는 뭐가 오느냐"는 둥, "아니 오기는 꼭 올 것이라"는 둥 주고 받는 동안에 내려가는 구렁 직전에 당도한 즉, 별안간 여기 저기 수풀 속에서 한 놈씩 우뚝우뚝 튀어 나오는데 모두 약 5, 60명 되는 모양이었다. 둘이서 내려가던 발을 멈추고 서니 그 중에서 한 놈이 구렁 건너편 소나무 밑으로 슥 나서는데 내려다 보니까 키가 훨씬 크고 입이 쭉 짜개진데다가 방울 눈이 부리부리, 어깨가 떡 벌어져서 몸집이 큰 깍짓동(몹시 뚱뚱하고 거대한 몸집)만했다. 마치 옛날 요대십위(腰大十圍)의 허저(중국 삼국지 위나라의 명장)가 갱생한 듯한 느낌이 나는데 과연 장사였다. 그놈이 바로 대두령, 도전장을 보낸 놈이었다. 이범진은 수영의 귀에다 입을 대고 "나는 데리고 온 하인이라 하자"며 입을 맞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놈이 건너다 보며 외쳤다.

도적 두령: "네가 이수영이냐?"

이수영: "그렇다. 내가 이수영이다."

도적 두령: "그럼 이 놈아. 너 혼자 오란 것인데 둘씩이나 온 것은 웬 일이냐?"

이수영: "이 사람은 내가 데리고 온 우리 하인이다!"

그놈의 뒤로는 덩치 5, 60명이 죄다 흉기를 들고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거리는 양 편이 5, 6간(9~11미터)쯤 떨어져 있고 지형으로는 이쪽보다 건너편이 조금 얕았다. 이범진은 수영의 귀에 입을 대고 "저놈이 괴수인 모양이니 어쨌든지 저 놈 한 놈만 때려 치우면 나머지는 손 댈 것도 없소. 그러니 종씨가 먼저 들어가 쳐 보시오. 만일 시원찮거든 내가 곧 쫓아들어가리라." 속삭였다. 수영이 "그러시오. 내가 먼저 들이칠 터이니 뒤쫓아 들어오시오." 하고 군호(암호)를 끝낸 뒤 다시 도적을 향해 쏘아붙였다.

"이놈 네가 이수영이 하고 결투하겠다고 나를 부른 놈이냐!" 도적 두령이 "그렇다 이놈아! 이리로 내려오너라!" 대답하자마자, 수영이 "오냐! 내려간다!" 우레같은 고함을 냅다 치며 공중으로 4, 5장(약 12~15미터)을 솟아 뛰었다. 독수리가 병아리 차듯 내려오는 길로 그 놈의 상투를 움켜 쥐고, 한 손으로 그 놈의 턱주가리를 받쳐쥐고는 닭의 모가지 잡아 비틀듯 냅다 잡아 틀어대니 "와지끈! 뚝딱!"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피스스 뻐드러졌다. 산골이 무너지는 듯한 그 호통이요, 약한 토끼를 내려치는 듯한 사자의 용맹이었다!

그 형세를 보고서 언덕 위에서는 이범진이가 "그놈들 쥐새끼같은 놈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잡으라"고 고함을 지르니, 거기 남아 있을 놈이 누가 있으랴? 5, 60명 조무래기 도적들은 일시에 혼비백산하여 설사를 확 싸붙이고 그 자리에 나자빠졌다가 산 사방으로 도망쳤다. 사람 목숨이 불쌍하여 그냥 놓아 보내놓고 뛰어내린 이범진은 이수영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정말로 종씨는 천하장사요. 오늘날의 여포요!" 하며 무수히 감탄하였다. 뻐드러져 나자빠진 놈의 상투를 쥐고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니 목뼈가 완전히 바스라져 청포묵처럼 흐느적거렸다. 이범진이 "그 육중하게 생긴 놈이 이 꼬락서니가 웬 일인고? 종씨 때문에 나는 힘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가게 됐소." 원망처럼 한 마디 하더니만, "엑기!" 소리를 치며 거기서 한 번 공중으로 솟아올라 처음 섰던 언덕으로 사뿐 뛰어올라 선다. 차력대신이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 후로 이범진은 가는 곳마다 수영을 "이여포"라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 팔장사 별선에 뽑혀 대원군의 총애를 받다

 

슬네꼴 강도단 몰살, 불러먹기(협박 강도) 정복 이야기, 그리고 경성의 명물인 '편싸움' 이야기 같은 굉장한 실전담은 얼마든지 있다. 당시 동대문 서대문 할 것 없이 편싸움에서도 이수영의 이름은 굉장하였다. 아랫편(수구문 밖 오강장사 명장들)을 전율습복(두려워 굴복함)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윗편(교사동 자하골)의 붕어 송천만(宋千萬), 갑천(甲天), 종집(鍾集) 등 범같은 장사들의 힘도 있었겠지만, 그의 스무살 당년에는 "월남긴옷"(그가 입은 옷에 빗댄 별명) 이수영이 떴다 하면 아랫편 장사들은 감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흩어졌다.

이러한 그의 용력이 임금님께까지 알려져 팔장사 두령에 뽑히고 대원군 3대에게 총애를 받은 결정적 계기는 다음과 같다.

그가 역시 종친부에서 낭청으로 근무할 때, 한 번은 도장궁(사직동 큰 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새벽 4시쯤 그의 팔촌 형(삼종형)과 함께 익선동 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금영(이왕직아악부) 문 앞을 다다르니 그의 팔촌 형이 옷자락을 붙들며 청했다. "여보게 이 사람아! 세상 사람이 다 그대의 용력을 칭찬하나 나는 아직 구경도 못했으니, 오늘 밤 아무도 없는데 자네가 저 대문 위에 뛰어 올라보게." 수영이 "그럼 한 번 뛰어 볼까요?" 하더니 "엑기!" 소리와 함께 훌쩍 뛰어 성큼 그 높은 대문 위에 올라섰다.

그 때 마침 돈화문 앞길로 웬 사람 두 명이 걸어오다가 야밤중에 대문 지붕 위로 호락호락 뛰어오르는 거동을 보고는 깜짝 놀라 수군거리며 다가왔다. 그 동안 수영은 지붕에서 슬쩍 뛰어내려왔고, 네 사람이 딱 마주쳤다. 그 중 한 사람이 인사를 청했다. "여보시오. 우리 인사합시다." 수영이 "여보, 아닌 밤중에 인사는 웬 인사란 말이오 대관절…" 하고 탁 쏘았더니, 옆에 서 있던 다른 한 사람이 거들었다.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지나가다가 노형이 이 대문 위에 올라 뛰는 것을 보고서 하도 엄청나기에 존함이나 알고 갈까 해서 그렇소."

수영이 끝까지 성명을 숨기려 하자, 먼저 인사 청하던 사람이 말했다. "여보, 그럴 것 무엇있오? 내 성명 먼저 말하겠소. 나는 상직현(尙稷鉉)이란 사람이오. 그리고 이 친구는 윤웅렬(尹雄烈)이란 친구요." 상직현은 그때 고종의 친위대인 무위소청의 수장이었고, 윤웅렬은 중군(지휘관)이었다. 그 때 고종 전하께서는 항상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계셨기에 특수 경호대인 '팔장사'를 비밀리에 뽑고 있던 때라, 두 무관도 전국을 뒤지며 용사를 구하던 중이었다. 수영은 그제야 자신이 울산부사 이만소(李萬韶)의 아들 이수영임을 밝혔다. 그들은 크게 반기며 다음을 기약하고 작별했다.

그 다음날 정오쯤, 궁골 그의 집으로 군관(무감)이 달려와 즉각 대궐로 입시하라는 고종 전하의 명령을 전달했다. 불시의 명령이라 수영은 친구의 집에서 사모관대를 급히 빌려 입고 대궐 편전(합문) 밖에 당도하니 상직현과 윤웅렬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이수영이는 어서 들어오라!" 외치는 소리가 났다. 들어가 보니 고종 전하와 곤전마마(명성황후), 그리고 민겸호(閔謙鎬), 민영준(閔泳駿) 등이 모시고 서 있었다.

고종 전하: "네게 종부 낭청 일은 누가 시켰느냐?"

이수영: "대원대감(흥선대원군)께서 시키셨습니다."

고종 전하: "네가 기운이 장사라니, 저기 놓인 저 돌을 들 수 있겠느냐?"

바라보니 동대전을 중수하려고 석공들이 대강 다듬어 놓은 길이 9척(약 2.7m), 폭 6척(약 1.8m)에 달하는 거대한 네모난 주춧돌이었다. 수영이 "네 들겠습니다" 하고 빌려 입은 사모와 관대를 조심조심 벗어서 척척 접어놓으니까, 어전에서 무엄하게 옷을 벗는 천진스러운 모습에 전각 위 궁녀들이 "깔깔깔" 웃어댔다. 고종 전하도 미소를 띠며 "가만 두어라. 아마 남의 옷을 빌려 입어서 아끼느라 저러나 보다" 하셨다.

주춧돌은 놓인 지 오래되어 땅속으로 한 뼘가량 묻혀 있었다. 수영이 한 손으로 돌의 저쪽 모서리를 턱 잡고 힘을 들여 앞으로 잡아끄니 2척(약 60cm)가량이나 뭉텅 끌려오면서 흙이 밀려났다. 놀라신 전하께서 "얘! 가만 있거라! 무감 중 최고의 역사인 천학송(千鶴松)이를 들라 해라!" 명하셨다. 당대 왕실 최고의 장사인 천학송이 들어와 어명에 따라 돌을 끌어보려 했으나 움찔움찔만 할 뿐 들지 못했고, 옆의 무감들이 달려들어 뒤에서 밀어주니 그제야 조금 밀려왔다. 수영은 그 모습을 보니 피가 끓어 참을 수 없었다. 와락 달려들어 그 거대한 주춧돌의 한 쪽 머리를 움켜쥐고는 번쩍 들어 무릎 위에 올리더니, 단숨에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려 버렸다!

고종 전하와 조정 대신들이 일제히 탄복하며 "참으로 천하장사이다! 항우요, 맹분과 조획이 다시 살아왔구나!" 격찬했다. 수영이 1분 가량이나 돌을 번쩍 들고 서 있다가 땅에 "쾅!" 내려 던지니 전각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자리에서 상으로 비단 50필과 왕실 장무(掌務) 직함을 하사받았다.

기쁨 가득히 집으로 돌아왔으나, 한 시간 뒤 철계의를 입은 의금부 나졸들이 들이닥쳐 "이수영을 즉각 금부로 압송하라"는 체포령(배지)을 내렸다. 온 집안이 근심에 싸였을 때 민겸호의 집에서 비밀 편지가 도착했다. "돌을 던질 때 전하께서 깜짝 놀라시는 바람에, 신하된 도리로서 형식을 갖추기 위해 일단 의금부로 잡아 가두는 시늉을 하는 것이니 절대 놀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과연 흰 옷으로 갈아입고 의금부로 잡혀간 수영은 한 시간 만에 곧바로 풀려났다. 이튿날 다시 입궐하니 고종 전하께서 친히 "네가 놀랬겠다. 네가 돌을 집어던질 때 내가 조금 놀랬다고 한 마디 했더니만, 밑의 신하들이 과잉 충성을 하느라 너를 고생시켰구나" 하며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내리셨다. 그 후로 그는 공식적인 '팔장사의 두령'이 되었고, 나이가 든 지금까지 운현궁을 지키는 노장이 되어 충성을 다하고 있다.


본 사료를 통해 검증된 근현대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역사적 사실

  • 고종의 신변 경호조직: 고종은 늘 신변의 위협을 느껴 전국에서 장사들을 모집해 '팔장사'를 구축했으며, 이들의 주 임무는 황실 최측근 호위였다.
  • 팔장사 이수영의 행적: 이수영은 흥선대원군에게 발탁되어 고종, 순종에 이르기까지 3대를 모셨으며, 구한말 무력의 상징이자 운현궁의 핵심 인물이었다.
  • 당대 왕실의 역사들: 본문에 언급된 '천학송'은 구한말 실존했던 무예별감 소속 최고의 장사였음이 확인된다.
  • 거물급 역사적 인물들과의 인적 연결망:
    • 이범진: 차력대신으로 묘사된 그는 구한말 명장 이경하의 아들이자, 훗날 헤이그 특사 '이위종'의 아버지이다.
    • 윤웅렬: 상직현과 함께 고종의 무관으로 활약한 그는 개화파 '윤치호'의 아버지이다.
    • 상직현: 고종의 최측근 무관이자 신변 경호 책임자였다.
  • 전통 편싸움과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 장사들의 실명 증언: 구한말 한양의 대규모 민속 격투였던 '위·아래 편싸움'의 실체가 드러나며, 특히 아랫편은 수구문(광희문) 밖 오강장사들이 중심이었고, 이수영이 속한 윗편(교사동 자하골)의 전설적인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 장사인 붕어 송천만, 갑천, 종집의 실명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 [무술적 가치] 태껸 실전 기술과의 일치성:
  • 불한당 괴수의 턱을 주먹으로 치받쳐 목을 부러뜨린 기술은 윗대태껸의 '턱걸이(턱치기)'와 정확히 일치하며, 도적 두령의 상투를 움켜쥐고 턱을 돌려 꺾어버린 활극은 윗대태껸의 핵심 살수(殺手)인 '상투잽이' 및 '목무장' 기술의 실전 사용 기록이다.

《별건곤》 기사 원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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