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별건곤 제21호 중 팔장사 두령 이수영의 기사를 현대어로 번역했습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원 사료 링크 : http://db.history.go.kr/id/ma_015_0190_0420)
기사제목
이수영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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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지용! 초인간적 괴력!
격천축지의 팔장사 두령, 천지장사 이수영 노인의 20대
음력으로 초하룻날이나 보름날 아침 7시쯤 교동골목으로 올라가면 천도교당 앞 운현궁 대문으로 키가 크고 탕건과 갓을 쓴 채 수수하게 꾸민, 얼핏 보기에 한 3,40밖에 안 되어 보이는 올해로 70세의 노장사 한 분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초하루와 보름마다 대원군 3대의 영전에 향을 올리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도 장정 몇 십명쯤은 앞에 달려들어도 족히 때려 업칠 수 있겠다는 삭옹(정정한 노인)이지만, 그가 20대에는 능히 하늘을 때려부수고 땅을 박차 터트릴 만한 기개와 용력을 가진 천하장사였다. 그는 이 기개와 용력으로 고종 태황제와 대원군에게 발탁되어 ‘이여포’, ‘이길동’, ‘팔장사 두령’, ‘운현궁 맹호’ 등으로 일컬어졌다.
그가 청년시절 힘쓰고 사람 치고 불한당 때려잡던 이야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장쾌한 대활극 몇 가지만 들춰보기로 한다.
수영이 종친부에서 낭청으로 근무할 때, 그는 본가 양주 계산답동=닥뫼논골로 부모님을 뵙기 위해 마부 봉이를 데리고 서울을 떠나서 천마산 고개를 넘으려고 했다. 고개 밑 주막집에서 봉이와 술 한 잔하며 허기를 달래고 고개가 험하기 때문에 말을 탈 수는 없으니까 말을 그냥 끌고 주막집을 나와서 몇 발짝을 산으로 올라가노라니 고개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숨이 턱에 닿도록 달음박질을 쳐 내려오면서
“여보시오, 당신 어디 가려고 그쪽으로 올라가시오?”
“우리는 이 고개를 넘으려고 가는 길이오.”라고 하니 그 사람들은 손을 가로 홰홰 내저으면서
“여보시오, 당초에 생각도 마시오. 지금 고개 넘어 개울바닥에 불한당 3, 40명이 진을 치고 서서 서울 올라가는 사람들을 허리띠 끌러 포박해놓고 돈이고 의복 패물 할 것 없이 죄다 훌훌 빼앗겼습니다. 아예 넘어갈 생각도 마시오.”
그러나 수영은 이렇게 말리는 것을 도무지 듣지 않고 오히려 심심도 하고 힘도 꼴리고 한데 해롭지 않게 생각할 뿐 조금도 마음에 겁이 나지를 않는지라, 봉이더러 말을 몰고 슬슬 뒤를 따라오라고 일러 놓고 먼저 올라간다. 마부 봉이도 그의 실력을 아는지라 그냥 따라오기는 하나 자꾸만 뒤에서 “나리마님 조심하세요.”를 연신 부른다. 그는 “오냐 걱정 말고 올라오너라!” 이러면서 올라가노라니 해는 지고 어두침침 어두워가는데 인적은 아주 영영 끊어졌다. 고개를 턱 올라서서 그 아래 개울 바닥을 내려가보니 소나무 밑에마다 사람이 하나씩 상투는 풀린 채 포박되어 매달려 있고 길가의 좌우에는 불한당이 바위 위에 듬성듬성 걸터 앉아있다. 모른 척 하고 슬몃슬몃 내려가며 보니 모두 다 그 아랫동네 개평, 논고을 사는 아는 사람이다. 묶여있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는 “아이구 나리마님! 사람 좀 살려주시오.” 애원을 한다. 그래도 못 들은 척 슬슬 내려가니까 몇 놈은 그냥 걸터 앉은 채 꿈쩍도 않고, 수십명 불한당은 쫑긋쫑긋 일어서서 양편으로 갈라서 고개 위로 향하여 올라가며 둥그렇게 에워싼다. 그러고 보니 혼자 3,40명 도적놈들의 한 가운데 들어서 곤재핵심(困在核心)으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지만, 그의 심장은 이런 때일수록 단단해지고 그의 철권은 이런 일을 당할수록 뿔뚱내뻐친다. 그 중 손에 커다란 박달나무 몽둥이를 든 건장한 덩치 큰 한 놈이 한 발 쑥 내딛더니
“네 이놈! 어데서 오니?”
“나는 서울서 온다!”
“이 놈 봐라! 서울서 온다? 이런 건방진 놈을 봤나! 그래 네놈 어디로 가는 길이냐?”
“논고을로 간다! 그래 어쩌란 말이냐?”
“이 놈이 그래도 계속 뻗대는구나! 네 이놈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이놈아 알기는 뭘 알어… 보아하니 너 이놈들 불한당이로구나!”
옆에 서 있던 어떤 놈이
“그 까짓 놈 그럴 게 뭐 있어? 달려 들어서 껍데기를 벗겨내리지 뭘…”
그는 단단한 물푸레 나무에 쇠가죽을 단 채찍 하나만 들었는데 그놈들을 가만히 보니까 죄다 단도와 방망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지라. 그런데 지금 앞에 나서서 말 붙이는 놈이 그 중에서 제일 괴수인 모양이라, 이놈 하나만 때려 꺼꾸러트리면 나머지는 문제도 없을 모양이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이 놈아 내가 껍데기를 벗겨…!”
말이 가며 주먹이 들어가는데 대번에 턱주가리 밑을 치받혀 질렀더니 목뼈가 부러지느라고 딱! 소리가 산골에 찌렁 울리면서 그 놈은 아무 소리 없이 그 자리에 그냥 꺼꾸러진다.
그리고 나서는 채찍을 들고 전후좌우에 있는 놈들을 제각기 한 번씩 이놈 치고 저놈 치고 한참 번개같이 날뛰는 통에 이놈들, 그 많던 놈들이 일시에 돌무더기 흩어지듯이 우르르 도망치며 산으로 뽈뽈 기어다니는 것을 본 그는 신바람이 나서 그제야 채찍을 집어 내던지고 그 놈이 잡고 있던 몽둥이를 집어들고 산비탈로 가는 놈을 날랜 호랑이같이 쫓아가서 그냥 그놈의 등마루를 몽둥이로 겨냥해서 냅다 내려치니 바위에 엎드려 기어가던 그대로 두 조각이 쩍 뽀개지며 그냥 그 바위에 척 붙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묶여 매달린 사람들을 돌아가며 풀어 놓아서 데리고 도로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가서 그날 밤은 무사히 지났는데 나중에 차력대신(借力大臣)으로 유명하던 이범진(李範晋)이 그 때 마침 그 동네로 친척을 보러 왔다가 수영이 본가에 온 것을 알고서 만나 보려고 찾아왔다. 서로 같은 일가(宗家)이기도 하고 또 힘센 것으로도 서로 그 때 뜻이 맞았던(志氣相合) 모양이다. 찾아와서 아침을 같이 먹던 도중 별안간 동네 사람이 어떤 목패 하나를 가지고 와서
“동네 앞 길가에 이것이 꽂혀 있는데 나리마님께 오는 것이라서 뽑아 왔습니다.”
그 목패를 보니
“이수영은 열어보아라. 네가 용력이 대단하다 하니 명일 정오에 달리기산으로 올지어다. 용력이 얼마나 되는지 나와 한 번 결투를 하여보자. 네가 만일 그 시간에 그 장소로 오지 않으면 졸장부이니라.”
하는 도전문이었다. 이것을 본 온 집안은 황황망조하고 그의 부친까지도 못내 염려하나 그는 피가 끓고 살덩이가 뛰놀아 뻗치는 힘과 노기를 이기지 못하여 마권찰장(摩拳擦掌)하며 어쩔 줄 모르는데 또 찾아왔던 이범진도 역시 그의 부친을 위로하는 한편
“우리들이 가고 보면 어지간한 무기깨나 가졌더라도 몇십 몇백은 넉넉히 처엎을 것이니 나도 같이 동행합시다.” 하며 동행하기를 청한다. 그리하여 두 장사는 몸을 거뜬하게 꾸미고서 결투의 길을 떠난다. 이 소문이 나니까 온 동네 사람들은 죄다 문 앞에 서서 구경을 하는데 여기 저기서
“저게 이범진이다! 저게 낙동장신(樂洞將臣) 이경하(李景夏)의 자제란다! 대를 이어 명장이다!”
이렇게 수군대는 소리가 이범진의 귀에 슬쩍 실처럼 감길적에 신이 나고 용기가 백배되어 대뜰에 나서서 이수영을 돌아다 보며
“여보 종씨! 장부가 세상에 나와 이럴 때 힘 한번 풀어보지 못하고 어느 때 써보겠소.”
말을 마치며 “엑기!” 소리가 기왓장이 울리게 한마디 나더니 대뜰에서 한 번 솟아 두 활개를 좍 펴고 높게도 얕게도 뜨지 않고 솔개처럼 날아가 그 앞 논을 지나 건너편 논둑에 오똑 내려선다.
그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소리치며 야단이다. 슥 돌아서더니 이수영을 건너다 보면서
“이보 종씨도 얼른 뛰어 건너와요! 글쎄…”
손짓을 하며 연에 연신 재촉을 한다. 그것을 본 수영은 어찌나 신명이 꼴리던지 어깨가 한번 으쓱! “엑!” 소리와 함께 훌쩍 솟아 칼새같이 날아가서 또한 역시 이범진이 떨어진 그 자리에 가서 사뿐 내려선다. 온 동네 사람들의 환호와 칭찬이 휘날리는 그 속으로 범같은 두 명의 장군이 손에는 촌철도 들지 않고 의기양양 대활보로 달리기산을 올라간다.
달리기산을 훌쩍 넘어 그 아래 벌판이 가깝도록 도무지 한 놈도 보이지 않는지라 “허장성세로 그 태만 놓았지 오기는 뭐가 오느냐”는 둥. “아니 오기는 꼭 올 것이라”는 둥 주고 받는 동안에 내려가는 구렁 직전에 당도한 즉, 별안간 여기 저기 수풀 속에서 한 놈씩 우뚝우뚝 튀어 나오는데 모두 약 5, 60명 되는 모양이라. 둘이서 내려가던 발을 멈추고 서니 그 중에서 한 놈이 구렁 건너편 소나무 밑으로 슥 나서는데 내려다 보니까 키가 훨씬 크고 입이 쭉 짜개진데다가 방울 눈이 부리부리, 어깨가 떡 벌어져서 몸집이 큰 깍짓동[콩나무 줄기를 많이 모아 크게 묶은 단, 몹시 뚱뚱한 사람의 몸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만하다. 마치 옛날 요대십위(腰大十圍)[허리둘레가 약 115센치]의 허저[중국 삼국지 위나라의 명장]가 갱생한 듯한 느낌이 나는데 과연 장사였다. 그놈이 대두령, 바로 도전한 놈이었다. 이범진은 귀에다 입을 대고 “나는 데리고 온 하인이라”며 입을 맞춘다. 아니나 다를까 저 놈이 건너다 보며
“네가 이수영이냐?”
“그렇다. 내가 이수영이다.”
“그럼 이 놈아. 너 혼자 오란 것인데 둘씩이나 온 것은 웬 일이냐?”
“이 사람은 내가 데리고 온 우리 하인이다!”
그놈의 뒤로는 덩치 5,60명이 죄다 흉기를 들고 장사진을 치고 있다. 거리로는 양 편이 5, 6간[9~11미터]쯤 떨어져 있고 지형으로는 이쪽보다는 건너편이 조금 얕았다. 이범진은 수영의 귀에 입을 대고
“저놈이 괴수인 모양이니 어쨌든지 저 놈 한 놈만 때려 치우면 나머지는 손 댈 것도 없소. 그러니 종씨가 먼저 들어가 쳐 보시오. 만일 시원찮거든 내가 곧 쫓아들어가리라.”
“그러시오. 내가 먼저 들이칠 터이니 뒤쫓아 들어오시오.”
군호[눈짓이나 말 따위로 몰래 연락함]가 끝난 뒤에 다시 건너다 보며
“이놈 네가 이수영이 하고 결투하겠다고 나를 부른 놈이냐!”
“그렇다 이놈아! 이리로 내려오너라!”
“오냐! 내려간다!”
한 마디 우레같은 고함을 냅다 치며 공중으로 4,5장 솟아 뛰었다가 독수리가 병아리 차듯 내려오는 길로 그 놈의 상투를 움켜 쥐고 한 손으로 그 놈의 턱주가리를 받쳐쥐고는 닭의 모가지 잡아 비틀듯 냅다 잡아 틀어대니 “와지끈! 뚝딱!” 그 자리에 피스스 뻐드러진다. 산골이 무너지는 듯한 그 호통, 약한 토끼를 내려치는 듯한 사자의 용맹!
그 형세를 보고서 또 언덕 위에서는 이범진이가 “그놈들 쥐새끼같은 놈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잡으라”고 고함을 치는데 거기 남아 있을 놈이 그 누구랴? 일시에 혼비백산 활치똥(설사)을 확 싸붙이고 그 자리에 나자빠진다. 5,60명 조무래기들은 사람 목숨이 불쌍하여 그냥 놓아 보내놓고 뛰어내린 이범진은 이수영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정말로 종씨는 천하장사요. 오늘날의 여포요!”
무수히 감탄하다가 뻐드러져 나자빠진 놈의 상투를 쥐고 그 놈의 대가리를 이리저리 휘적휘적 흔들어 보니 뼉다구라고는 그냥 바스라져 청포묵처럼 흔들거린다.
“그 육중하게 생긴 놈이 이 꼬락서니가 웬 일인고?”
하면서 둘이 서로 쳐다 보고 박장대소. 이범진은 다시 수영을 쳐다 보며
“종씨 때문에 나는 힘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가게 됐소.”
원망처럼 한 마디 하더니만 “엑기!” 소리를 치며 거기서 한 번 공중으로 솟아올라 처음 섰던 언덕으로 사뿐 뛰어올라 선다. 차력대신이라더니 명불허전이다. 그러고 나서 이범진은 가는 곳마다 수영을 “이여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슬네꼴 강도단 몰살, 불러먹기[남에게 협박장을 보내거나 밤중에 밖으로 불러내어 재물을 강제로 빼앗는 짓] 정복, 편싸움 이야기같은 굉장한 실전담은 얼마든지 있다. 경성 명물인 편싸움에도 그 이름은 굉장하였다. 아랫편(오강장사(五江壯士) 수구문(水口門) 밖 명장)을 전율습복(戰慄慴伏)[전율하고 두려워서 굴복함]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윗편(교사동(校寺洞) 자하골)의 붕어 송천만(宋千萬), 갑천(甲天), 종집(鍾集) 등 범같은 장사의 힘도 있었겠지만 그의 스무살 당년에는 “월남긴옷”(그가 입은 옷에 빗댄 별명)이 나왔다면 편싸움이 어울러 보지도 못하였다. 그런 굉장 뻐근하고 흠뻑 푸짐한 이야기가 한 둘이 아니지만 지면관계로 죄다 실을 수는 없으니 다음 기회로 미루고 끝으로 그의 용력이 임금님께까지 알려져 팔장사 두령에 뽑히고 대원군 3대에게 총애를 받은 동기만 소개한다.
그가 역시 종친부에서 낭청으로 근무할 때 한 번은 도장궁(都壯宮) = 이해창가(李海昌家) = 사직동(社稷洞) 큰 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새벽 4시쯤 해서 그의 삼종형[팔촌 형]과 함께 익선동 집으로 내려 오는데 그 때의 금영=이왕직아악부 문 앞을 다다르니 그의 팔촌 형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의 옷자락을 붙들면서
“여보게 이 사람아! 세상 사람이 다- 그대의 용력을 칭찬하나, 나는 아직 구경도 못했으니 오늘 밤 아무도 없는데 자네가 저 문 위에 뛰어 올라보게.”
“그럼 한 번 뛰어 볼까요?”
“엑기!” 소리와 함께 훌쩍 뛰어 성큼 그 대문 위에 올라섰다. 그 때 마침 돈화문 앞길로 웬 사람 두 명이 돌아 오다가 모퉁이 길에 서서 지붕 위에 올라 뛰는 거동을 모고서 서로 무엇인지 수군수군 지껄이며 그 앞으로 걸어온다. 그 동안 그는 지붕에서 슬쩍 뛰어 내려왔다. 네 사람이 딱 마주치며 그 중 한 사람이 수영의 앞으로 다가서더니,
“여보시오. 우리 인사합시다.”
인사를 청한다. 그 사람들의 행동이 수상도 하고 그 때 그의 눈 앞에는 무서운 것이라고는 없는 때라.
“여보, 아닌 밤중에 인사는 웬 인사란 말이오 대관절…”
한번 탁 쏘았더니 한 사람이 옆에 섰다가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지나가다가 노형이 이 대문 위에 올라 뛰는 것을 보고서 하도 엄청나기에 노형의 존함이나 알고 갈까 하고서…”
“성명은 알아 무엇하겠소. 밤도 늦었으니 일찍 가서 주무십시오. 나도 가서 자야겠소…”
먼저 인사 청하던 사람이
“여보, 그럴 것 무엇있오? 내 성명 먼저 말하겠소. 나는 상직현(尙稷鉉)이란 사람이오. 그리고 이 친구는 윤웅렬(尹雄烈)이란 친구요.”
상직현은 그때 무위소청(武衛所廳)의 수장으로 있을 때요, 윤웅렬은 중군(中軍)이었다. 그 때 이태왕전하[고종]께서 항상 신변의 위험을 느끼셨는지 팔장사를 뽑을 때이므로 상과 윤도 역시 용사를 찾아 구하고 있던 때였다. 수영은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들은 다시 직함과 주소를 묻고 수영이 울산부사 이만소(李萬韶)의 아들임을 알고서 일면여구[초면이지만 마치 오랜 친구처럼 반기다] 반기다가 그날 밤은 그냥 작별하였다.
그 다음날이다. 정오쯤 해서 궁골 그의 집으로 무감[무예별감]이 교지(무위소장무(武衛所掌務))를 전달하고 즉각으로 입시[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알현]하라고 재촉한다. 불시로 친구의 집에서 사모와 관대를 빌려 입고 지궐(指闕)하여 합문[편전의 앞문]밖에 들어가니 상직현, 윤웅렬이 거기서 기다린다. 조금 있노라니 합문이 열리면서
“이수영이는 어서 들어오라!”
외치는 소리가 난다. 들어가며 가만히 쳐다보니 전하께서는 대청 바로 마루 끝에 나서 계시고 그 뒤로는 나인 수십 명이 나란히 서서 있으며 곤전마마[왕비] 민겸호(閔謙鎬) 민영준(閔泳駿)(지금의 민영휘泳徽)이 모시고 서 있다.
“소신 이수영 아뢰오…”
“네게 종부 낭청 일은 누가 시켰느냐?”
“대원대감[흥선대원군]께서 시키셨습니다.”
“네가 기운이 장사라니, 저기 놓인 저 돌을 들 수 있겠느냐?”
돌아다보니 동대전을 중수하려고 석공의 손으로 대강 다듬어 놓은 길이이 구 척, 폭이 육 척쯤 되는 네모난 주춧돌이었다.
“네 들겠습니다.”
슬몃슬몃 사모와 관대를 벗어서 척척 접어놓으니까 전각 위에서 “깔깔깔-깔” 궁녀들의 웃음소리가 내려온다. 옷 입은 채로 들지 않고 어전에서 무엄하게 천진스럽게 웃옷을 함부로 벗기에 웃는 것이었다. 전하도 역시 미소를 띄우시고
“가만 두어라. 아마 남의 것을 빌려 입었나보다.”
돌 옆으로 가 보니까 그 큰 돌을 놓은지 오래 되어서 땅속으로 한 뼘가량은 묻혀있다.
한 손으로 돌의 저쪽 모서리를 턱 잡고 힘을 들여 앞으로 잡아끄니 이 척 가량이나 뭉텅 끌려오는 통에 흙이 밀려 소스라쳐 돌 위로 올라 솟는다. 그것을 내려다 보시던 전하는
“얘! 가만 있거라! 무감 천학송(千鶴松)이를 어서 들라 해라!”
“천학송이 어서 들어오너라!”
무감 중 역사이던 천학송이 즉시 들어온다. 전하는 학송에게 돌을 끌어 보라고 어명하신즉 그가 돌을 잡고 앞으로 달려보나 움찔움찔하기만한다. 옆에 섰던 무감들이 달려들어 뒤에서 밀어주니 그제야 조금 밀려온다. 수영은 그것을 보고 서있는데 힘이 꼴려 참을 수 없다. 와락 달려들어 돌의 한 쪽 머리를 번쩍 들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 번 추스려 머리 위로 올렸다. 상감마마는
“참 천하장사이다. 항우로구나! 맹분조획(孟賁鳥獲)[맹분과 조획. 둘 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장사]이로구나!”
전상전하 할 것 없이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다. 1분 가량이나 들고 섰다가 도로 땅에 “쾅!” 내려 던지니 전각이 쩌렁 울린다. 그 자리에서 상으로 비단 오십필을 하사하시고 장무(掌務)[직함의 일종]를 수여하신다. 국궁배례. 물러나와 집으로 돌아왔더니 온 집안이 환희영예의 꽃이 피었다. 상으로 받은 비단을 대령에 펼쳐 놓고 황은을 감읍하는데 별안간 대문에서 철계의를 입은 사람이 썩 들어서더니 “이수영을 즉각 금부로 잡아오라” 는 배지를 준다. 이것은 도무지 웬일인가? 가문의 환희는 별안간 근심으로 변모한다. 잠시 있으니까 민겸호의 집에서 하인이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떼어 본즉 “위에서 돌 떨어뜨릴 때 놀라셨는고로 신하된 도리에 황송하여 그저 형식으로 금부로 잡아오라 시키는 것이니 놀라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제야 비로소 흰 옷과 흰 신으로 바꿔 입고 금부로 잡혀가니 한 시간쯤 해서 바로 내보낸다. 이것이 그 때의 형식이며 또 황실의 위엄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이튿날 다시 입시의 소명을 따라 입궐한즉, 전하께서
“네가 놀랬겠다. 네가 돌을 집어던질 때 내가 조금 놀랬다고 한 마디 했더니만 너를 그렇게 했다는구나.”
위로의 말씀을 내리신다. 그 후로 팔장사의 두령까지 되었고 지금 와서도 운현궁 노장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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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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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기사 원문이미지를 옮겨온 것입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원 사료 링크 : http://db.history.go.kr/id/ma_015_0190_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