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사)윗대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협회 & 강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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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프로젝트의 개요
윗대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협회 이사 강태경 (2025. 8. 16. 업데이트)
<프로젝트 임호>는 태껸택견, 결련택견, 옛법택견, Taekkyeon의 역사를 추적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임호(林虎)는 송덕기의 스승으로 당대 최고의 태껸인으로 기억된다. 임호의 제자들과 주변인물들의 역사를 추적하여 태껸을 실제로 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를 추적함으로서 태껸이 당시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이에 더 나아가 프로젝트 임호의 과정에서 추적되는 여러 인물들을 발굴해냄으로서 조선 말~일제강점기를 거쳐갔던 여러 무인들의 행적을 파악하고, 발굴하여 묻혀있던 그들의 삶을 현대에 되살리는 취지가 있다. 이들의 역동적이었던 삶은 당시의 시대 변화와 그 과정에 대응했던 무인들이 걸어온 길을 보여줌으로서 당시의 역사를 보다 풍성하게 되살려낼 것이라고 판단된다.
아울러 태껸의 동작과 태껸춤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승되어온 희귀한 몸놀림으로 당시 한국인들의 무형문화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태껸의 몸놀림은 활과 병장기와 같은 여러가지 무기를 다루는 무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한국의 무용과도 매우 높은 유사성을 보이며, 사람을 밟아서 뛰어넘거나 몸통을 돌려 차는 등의 재주를 넘는 동작들은 재인들의 기예와도 연관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임호와 당대의 태껸인들이 사회 속의 위치를 보다 정확히 파악한다면 이런 무형문화간의 연결성을 엄밀히 파악하고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동안 임호가 정확히 누군지,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그에 대한 정보는 송덕기가 임호를 회고하면서 남긴 몇 개의 일화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임호에 대한 송덕기의 회고 중에서 임호의 무용담 외에 그의 신원을 추정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다음 정도였다. ‘그가 ‘팔장사’ 중 으뜸이었다’는 이야기, ‘임호가 데릴사위로 결혼하였고 그의 장인은 보인학회의 초대 교장’이라는 이야기, ‘임호가 필운동에 살았다’는 이야기, ‘외대의 태껸하는 사람들이 임금이 암행할 때 호위하였다’는 이야기, ‘임호가 학자였고, 인물이 좋았으며, 사람들이 그를 많이 따랐다’는 이야기 정도가 있었으나, 이를 단서로 진척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송덕기가 그의 나이에 대해 언급할 때 몇 개의 다른 나이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출생한 시기가 불분명하며 사망한 시기도 전해지지 않지만, 임호가 송덕기의 둘째 형님과 친구였다는 고용우의 증언을 고려하고,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1882년생으로 추정하는 것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송덕기의 제자인 고용우, 이준서에 따르면, 송덕기는 스승 임호에 대하여 숭배에 가까운 무한한 존경을 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에 비추어볼 때 이상하게도 임호의 행적에 대해서는 남긴 이야기가 매우 적다. 이는 임호나 송덕기 이전에 태껸을 했던 사람들의 역사를 추적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장애로 작용하였다. 여기에 더불어, 태껸이 문화재로 지정되고 난 뒤, 송덕기 옹과 신한승 옹이 같은 해에 타계하였고, 그 뒤에 남은 제자들의 계파간 갈등까지 발생하면서 태껸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는 태껸계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얽혀 그 자체로 순수하게 진행되기 어려웠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옛날 신문들과 수 많은 근현대사의 사료들이 전산화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어 검색이 가능해졌고, 근현대사 연구가 축적되고 그것이 공개됨으로서 임호를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이 만들어졌다. 임호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검색이 가능해졌고, 2010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양의 정보가 태껸인들에게 개방된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임호”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존재했음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한인사회당 설립에 참여했던 무장독립운동가 임호였다(2010년 독립유공자 애국장 서훈, 관리번호 71010). 또한 옛날신문과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는 임호라는 이름의 인물의 활동 내역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지역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함경북도, 연해주, 북만주 등의 지역을 배경으로 활동해온 임호를 태껸인 임호와 결부짓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것으로 보였고, 태껸인 입장에서 이 둘을 같은 인물로 상정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2009년 말부터 한국에서는 고용우, 이준서가 활동을 재개했다. 특히 고용우는 송덕기의 직계제자 중 십수년의 시간 동안 송덕기로부터 태껸을 배우고 송덕기와 깊은 신뢰관계를 형성했던 인물로, 태껸의 실기적 내용 전모에 대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깊이와 몸놀림을 보여주며 한국에서 제자를 기르기 시작하였다. 이는 태껸 연구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고용우를 통해 전해진 태껸의 기예는 통상적인 태껸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며, 태껸이 무엇인지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고용우의 등장 이전에는 마치 씨름처럼 민중들이 했던 경기 위주의 민속놀이로 파악되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던 태껸이 알고 보니 장시간 동안 다양하고 어려운 훈련을 거쳐야 되는 무예임을 파악하게 해주었고, 이는 태껸에 대한 배경을 접근하는데 있어서 전문적인 무관들을 연구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었다.
고용우의 영향을 받은 태껸인들은 태껸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태껸 연구의 전반을 재검토하였다. 태껸이 직접적으로 상대방을 상해하는 데에 사용되는 무술이며 치고, 차고, 걸어넘기고, 메치고, 조르고, 꺾으며, 무기술과도 조응하는 등 무예 전반을 포괄할 수 있는 상당히 완결성 있는 무예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태껸을 수련하는 다른 협회에서 수행했던 동작들 중 송덕기로부터 온 것들이 어떻게 포괄적으로 연결되는지 또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에는 사단법인 위대태껸회(현재 사단법인 윗대태껸협회)가 발족하였고 지도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2022년을 전후하여 고용우의 한국 제자들의 수련진도가 태껸 전반을 포괄할 정도로 무르익었고, 또한 윗대태껸협회 고용우를 통해 송덕기의 행적이 한반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주에 다녀온 적도 있었다고 이야기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위대태껸회 조직을 준비하던 시기에 나왔던 이준서의 발언 중 임호의 행적이 서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만주에 독립운동을 하러 갔던 것일 수 있다는 얘기와 조응하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윗대태껸협회에서는 임호를 비롯한 송덕기와 그의 동문들의 행적을 다시 추적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고용우를 통해 보존된 태껸의 기법이 실질적으로 무예 전반을 포괄하는 형태인데, 이러한 무술을 당대에 어떤 집단이 어떤 이유로 발전시키고 수행했는가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임호의 행적을 파악해낸다면, 그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프로젝트 임호>의 접근법은 송덕기의 스승이었던 태껸인 임호가 2010년 애국장으로 서훈된 독립유공자 임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포함하여, 실록, 옛날 신문, 잡지, 그 외의 사료나 증언들을 수집하여 임호와 당대의 태껸인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이다. 주된 자료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와 네이버 옛날신문, 그리고 한국고전종합데이터베이스이다.
임호라는 사람이 직접 본인의 회고나 자료를 남긴 것은 없었고, 임호의 일대기가 남아있는 글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임호라는 인물과 연관된 자료를 다 수집하고 사료 비판을 통해 연관성이 높은 자료들을 중심으로 일관된 인물의 행적을 정리하고 있다. 거기에 임호와 밀접하게 연관된 인물들을 추가로 추적함으로서 임호의 활동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다.
임호가 등장한 자료에 나오는 주변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분석은 이 프로젝트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는 태껸인이 실제로 역사 속에 어떤 위치를 취하고 있느냐를 파악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목적에 따른 작업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료를 수집해 보니 임호의 기록들이 존재하나 맥락이 끊긴 채로 활동기록만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서, 각각의 임호가 어떤 인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정돈하고, 그 인적관계가 얼마나 겹치냐에 따라 이를 동일 인물의 활동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를 추정하는데 근거로 삼기 위해 관계분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하재일기>에는 서울에서 온 임호가 교사로서 초빙되어 활동하는데, 임호와 동행한 인물들이 있다. 그 인물들이 행적이 추적되는 사람이라면, 이 인물들이 애국장을 수여 받은 임호와 인적 관계가 겹치는지를 파악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주요하게 서술을 전개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임호”가 언급되는 자료를 묶어서 구성되는 인물의 시계열적 나열, 2) 각 임호와 그의 주변인물의 관계 서술 3) 여러 임호들의 대조를 통해 연관성 검토 및 판단.
1) 우선 임호 자료를 시계열적으로 정리를 하면 시간적으로 겹치는 인물들의 경우,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충돌되는 자료를 걸러낼 수 있다. 또한 그들이 특정 시간에 어떤 장소에서 주로 활동했는지를 통해서도 인물들이 시계열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모은 자료를 직관적으로 동일인물로 판단할 수 있는 가까운 것들끼리 묶어낸 뒤 각각을 분류하고 추가 설명을 붙인다. 예를 들어 임호(태껸), 임호(분원) 등이다.
2) 묶어진 인물의 주요 인적 관계와 조직적 관계를 정리한다. 각각 묶여진 인물 주변에 연관된 관계들이 무엇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우선 동료, 적, 종교, 조직, 사상, 정치와 같은 ①사회적 관계를 중점적으로 본다. ②연고와 지역적 연관성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각 인물 묶음에서 드러나는 ③인물의 성격이나 능력, 특성(예를 들면 무예나 군사적 능력 등)을 검토한다.
3) 임호와 그의 주변인물의 관계도 작성은 임호가 언급된 자료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을 추적하여 작성한다. 이 과정은 각 임호(A)가 어떤 인간관계 속에서 활동했는지를 보여주게 되는데, 만약 다른 임호(B)와도 인간관계가 유사하거나 동일한 조직에서 활동을 하거나 같은 취지의 활동을 하는 등 연관성이 있다면, 이들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만약 인적 관계가 지나치게 단절적이라면 동일인물일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찾아낸 임호는 대략 10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번을 태껸인 임호(이후 임호(태껸))로 설정하고, 나머지는 관련 기록의 첫 등장 시기를 중심으로 시계열로 정리하였다. 사료에는 훨씬 더 많은 자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단발성 기사에 해당하는 것들이나,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적은 인물들, 혹은 중심 되는 인물인 임호(태껸)나 임호(무장)과의 직접적 연관성이 떨어지는 자료들은 우선 선별하여 싣지 않았다. 하지만 추후 연구과제로서의 가치는 남아있다고 보인다.
| 1. 임호(태껸) | 태껸인이자 팔장사인 임호 |
| 2. 임필호 | 남대문 전투에 참전했던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 참위 임필호(林弼鎬) |
| 3. 임호(분원) | 근대 학교인 분원학교의 교육자 임호 (서울, 경기도 광주) |
| 4. 임가(육모) | 부산에서 육모술을 알려주고 만주로 간 서울 사람 임호 |
| 5. 임호(무장) | 좌익 계열 무장독립운동가 임호 (독립운동가 공훈록) |
| 6. 임호(용정) | 용정 일대의 학교에서 교사 활동을 했던 근대 학교의 교육자 임호 |
| 7. 임영한 | 장작림과 오패부 사이를 이용하여 혼란을 초래한 인물 임영한(林泳漢) |
| 8. 임호(협박) | 이완용의 둘째아들 이항구에게 협박장을 보낸 임호 |
| 9. 임호(장충) | 경성에서 <장충> 과 <신간회> 활동을 했던 임호 |
| 10. 임호(뚝섬) | 뚝섬에서 제방 쌓기 운동을 했던 임호 |
| 11. 임호(소설) | 소설 <괴청년>의 주인공 임호 |
이 중에서 가장 중심축은 **1. 임호(태껸)**와 **5. 임호(무장)**이다. 공훈록에 실린 임호(무장)이 임호(태껸)와 동일인물인지 여부를 추적하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 축이 된다. 이는 여러가지의 세세한 검토를 요청한다. 물론 무장독립운동이라는 영역은 무인 출신인 임호(태껸)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공훈록에 수록된 상세한 이야기들은 임호(태껸)에 대한 이야기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분량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임호(태껸)에 대해 남은 일화들과, 여러 사료에 남아있는 임호들의 흔적들은, 서로 기묘한 연결고리들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연속적인 흐름을 드러내는 것이 이번 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위 표로 정리했던 11개의 임호 혹은 임호와 유사한 이름을 가진 인물들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사항 즉, ①사회적 관계, ②지역적 연관성, ③인물의 능력이나 성격 측면에서 상당히 많은 점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근거들은 이들을 하나의 인물이거나, 혹은 깊은 연관이 있는 인물들로 추정해볼 수 있게 한다. 즉, 각각의 사료들을 검토하고 인간관계를 연결하고 추적하면서 현재까지 내려진 작은 결론은 위의 인물들이 한 명의 인물이거나, 혹은 한 명의 인물을 둘러싼 활동들을 의미한다는 가설이 충분히 ‘연구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후에는 위에서 설명한 11개의 임호를 순차적으로 서술하되, 서로 다른 인물 묶음들 사이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연구의 논리적 순서를 엄정히 하자면, 먼저 각 인물 묶음에 대해 내용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 인물 묶음의 연관성을 비교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태껸인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은 여러 시간적 제약에 놓여있다. 1900년대부터 1930년대를 주요 활동기간인 임호에 대한 연구는 그를 회고하는 인물이나 이야기를 전해 받은 사람들이 많은 경우 이미 사망하였고, 있더라도 매우 고령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가설적 주장이나마 미리 이를 공개하여 조금이라도 더 빨리 관련된 사료나 증언자들이 찾아질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또한 필자 역시 한국사를 전공한 전문가가 아닌 상황에서, 역사적 편린을 제대로 추적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자들의 참여와 헌신이 절실하다. 안타깝게도 태껸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들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특히 태껸이 민간에서 비전문적으로 행해진 유희에 가깝다는 선입견은 전문 군인이 수행한 무예로서 태껸을 떠올릴 수 없게 만들어서 무장독립운동가 임호와의 연결 자체를 상상하기 어렵게 하고 있기에 이를 학술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에, 본 글에서는 각 인물 묶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잠시 미루고, 태껸인 임호가 무장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임호였을 것이라고 추정할 만한 굵직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인물 묶음들 사이의 연관성을 드러냄으로서 이 주제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그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를 접근하고, 구체적 역사적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게 도모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법은 개별 인물 묶음에 대한 온전한 정리를 선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논리적 취약성을 띤다. 하지만 여러 인물 묶음들은 하나 하나 따로 두고 보았을 때는 하나의 인물일 가능성을 상상하기가 어려우나, 마치 퍼즐조각들처럼 서로가 조금씩 이어져서 하나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므로 새로운 인식틀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이후에는 위에서 설명한 11개의 임호를 순차적으로 서술하되, 서로 다른 인물 묶음들 사이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문헌, 태껸의 계승자들의 증언, 현재 온라인에서 접근 가능한 데이터베이스와 사료들을 기반으로 태껸의 근현대사의 구체적 모습을 추적하는 일정의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임호(태껸)와 임호(무장)의 명확한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만한 문헌이나 기록과 같은 확정적인 증거는 아직 확보하지 못하였으나, 현재 인터넷이나 문헌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공개된 정보만으로도 그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여러 임호들의 실제 활동 장소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된다면 훨씬 더 결정적인 자료들이 나오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태껸이 위치한 곳을 보다 명료하게 찾아냄으로써 태껸과 관련된 조선 말기의 무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게 하며, 과거의 역사를 보다 생동감 있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당시 무인들의 인적 관계망과 활동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당시 무인의 역할, 무술, 한 발 더 나아가 체육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설명을 제공해줄 것으로 보인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여기까지 읽으신 많은 분들의 참여와 도움이 더해진다면, 태껸과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무인과 체육인들이 어떻게 엄혹한 시대를 해쳐나갔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로 우리가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끝.
임호의 인물 관계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중)
공동 연구 희망 및 제보·문의 안내
본 프로젝트에 공동 연구를 희망하거나 제보, 문의 등이 있으신 분은
강태경 이사의 이메일 cgtktk@gmail.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1]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위해서 수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다. 윗대태껸을 십수년간 헌신적으로 지도해주시고 태껸의 이야기들을 지키고 전해주신 고용우 스승님이 아니었으면 이 모든 일은 근본적으로 시작될 수 없었다. 또한 이는 스승님과 함께 태껸을 수련하며 태껸의 모습을 찾기 위해 함께 고생한 윗대태껸협회 동문들의 집합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특히 더 감사를 드려야 하는 분들이 있다. 윗대태껸협회의 공현욱 이사장님은 함께 스승님을 뵈러 가는 여행에서 시작하여 임호에 대해 함께 연구한 것을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함께 구상하고 연구하고 검토해 주셨다. 김형섭 사범님은 함께 자료를 검색하며 검토하고, 검증하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장진웅 연구자께선 임필호와 임호(분원)의 문헌을 찾아줌으로써 1910년 이전의 임호를 추적하는데 큰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우용곡 작가님도 문헌조사와 인물 조사에 도움을 주었다. 김헌주 교수님, 임동현 박사님께서는 연구 중간에 검토를 해주시고, 연구방향 설정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모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 밖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감사를 표하지 못한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2] 강태경 이사 이메일: cgtktk@gmail.com